미국의 '고금리 쇼크'가 또다시 한국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을 종료하고 올해말이나 내년 상반기에는 금리 인하 스텝에 들어갈 것이란 예상과 달리 미 금리가 '더 높은 수준에서 장기간 유지되는'(higher for longer) 상황이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으면서다. 3일(현지시간) 글로벌 채권시장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 국채 10년물은 16년만의 최고 수준인 연 4.80%선을 돌파했으며, 다우지수는 급락하고 달러화 가치는 급등했다.
그 여파로 4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는 추락하고, 원·달러 환율은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릴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며 고금리에 고환율, 고유가에 따른 고물가의 고통이 이어질 것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특히 국내 금리가 뛰면 부동산 가격 하락 요인으로 작용,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이 심화되고 T·L사 등 일부 건설 대기업의 경우 경영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3일 4.81%까지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추석 연휴기간동안 26bp(0.26%포인트, 1bp=0.01%포인트)가 뛰었다. 2년물은 5.1590%를 기록했다.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작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107대로 올라섰다. 이에 따라 다우·나스닥 등 미 증시 주요 지수가 1%대 동반 하락한 가운데 '증시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는 장중 한때 심리적 지지선인 20선을 돌파하는 등6개월 만의 최고치를 넘어섰다.
미 국채 금리가 뛴 건 △소비자물가지수의 추가 상승 우려 △양호한 제조업과 고용 지표 △이를 기반으로 한 연준 인사들의 매파(통화긴축 선호)성 발언 △연방정부 셧다운 위기를 늦춘 45일짜리 임시 예산안 국회 통과 등이 꼽힌다. 연준 주요 인사가운데 보먼(이사), 카시카리(미니애폴리스 연준)가 추가 금리 인상을 지지했으며, 굴스비(시카고), 윌리엄스(뉴욕)는 장기간 금리 동결을 강조했다.
마이클 바 연준 부의장은 "연내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한지는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라며 "현 시점에서 중요한 질문은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을 위해 금리를 충분히 긴축적인 수준에서 얼마나 지속할 필요가 있는지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미셸 보먼 연준 이사는 물가상승률을 적기에 2% 수준으로 되돌리려면 연내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올해 한 차례 더 금리 인상이 필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미 10년물 국채 금리가 5%까지 상승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헤지펀드계 거물인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회장은 전날 CNBC방송과 인터뷰에서 "30년 만기 국채 금리가 5% 중반에, 10년 만기물은 5%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월가의 '채권왕'으로 불렸던 유명 투자자 빌 그로스도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5%까지 갈 것 같다"며 "현재 시장은 국채 공급 전망과 연준의 고금리 장기화 기조 등으로 과매도 상태"라고 진단했다.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도 "금리가 연 7% 수준으로 오를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여상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기술적으로 볼때 다음 저항선은 4.94%이며, 2007년 고점인 5.3%를 뛰어넘을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4일 국내 증시의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59.38포인트(2.41%) 하락한 2405.69, 코스닥지수는 33.62포인트(4.00%) 내린 807.40으로 장을 마쳤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미디어콘텐츠본부장은 "실적 시즌이 시작되며 증시의 단기 반등은 있겠지만 상승 추세로 전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망했다.그러면서 2500선에서 100포인트 안팎의 박스권 흐름을 예상했다.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224%포인트 오른 연 4.108%에 장을 마쳤다. 10년물 금리는 연 4.351%로 32.1bp 상승했다.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2원 급등한 1363.5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 지난해 11월 10일 이후 11개월 만에 최고치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1차 저항선인 1360원을 돌파했으며 2차 저항선은 1400원"이라며 "1400원까지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위원도 "단기적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1380원까지는 오를 수 있다고 본다"며 "물가, 경기 등 지표에 따라 환율 방향이 달라질 것이며,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그 분기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고금리 쇼크는 올해 1% 저성장에 이어 내년 2%대 성장을 장담하기 어려운 한국 경제에 치명타다. 한은이 물가와 환율(원화 가치) 안정을 위해 금리를 인상할 경우 경기 회복 모멘텀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이자 부담이 커진 가계와 기업이 소비·투자를 줄이면 내수 침체는 깊어지게 된다. 게다가 가계와 기업의 부채가 빠른 속도로 증가, 한은으로선 금리를 올리기 어려운 진퇴양난의 처지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환율 상승 등 금리 인상 요인이 많다"며 "가계대출 급증세를 제어하기 위해서도 일정 부분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 이럴 경우 추가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어 개별적인 유동성 공급을 위해 지속적인 상황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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