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오션이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 HMM(옛 현대상선)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주가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팬오션의 지분 54.77%를 가진 모회사인 하림지주는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JKL파트너스와 컨소시엄을 꾸려 HMM 본입찰에 참여했다.
'대어' 인수에 대한 기대감이 무르익자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몰렸지만, 당장은 시너지보다는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도 따른다.
지난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팬오션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전거래일 대비 3.55% 오른 4525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에는 9.7% 급등한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본입찰 마감일(이달 23일)이 지난 10거래일 동안 팬오션의 주가는 10%가량 올랐다.
본입찰에서 팬오션과 경쟁하게 된 동원산업은 항만·물류 관련 100% 자회사인 동원로엑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매각 대상은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가진 HMM 지분 약 4억주(지분율 57.9%)다. 이날 기준 HMM의 시가총액은 10조원 중반대로, 하림과 동원은 각각 6조4000억원과 6조3000억원을 인수 희망가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측인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이르면 내달 초 우선협상대상자를 통보할 전망이다.
하림 측은 하림이 민간 최대 곡물 수요처이기 때문에 곡물 운송 1위 선사 팬오션과의 시너지(상승효과)가 크다고 판단했다. 증시 투자자들도 이같은 기대감에 HMM에 매수세가 몰렸다.
하지만 두 곳 모두 자체 여력만으로 인수자금을 마련하기는 어려워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HMM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실제로 인수에 필요한 현금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현금 지출이 예상되고 차입에 따른 맏개한 이자 비용까지 부담해야 할 전망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하림그룹이 보유 중인 현금성 자산은 1조6000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팬오션은 자기자본 3조원과 인수금융 3조5000억원 등으로 인수금을 마련한단 구상인데, 현재 3조5000원을 7%대 금리로 빌린다고 가정하면 연 2400억원 이상의 이자를 감당해야 한다.
특히 산업은행이 HMM 인수자에 대해 배당 가능 금액을 3년간 1조5000억원으로 제한했다. 2021~2022년 업계가 호황일 때 HMM의 현금 배당 성향이 5%대였지만, 몇 년간은 대규모 배당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두 회사가 모두 인수를 위해 대출 승인을 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하림이 상대적으로 더 여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은행에 다른 재무적투자자(FI)를 끌어들이거나 하면 이자는 더 높아진다"며 "현재 해운업황을 봤을 때 자금 회수가 가능할까 하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해운업황 또한 곧바로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다. 해운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침체 우려로 글로벌 해상 운송 수요가 주춤해진 가운데 코로나19 당시 낮아진 운임이 유지되면서 수익성은 날로 악화된 것이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 업체 클라크슨리서치에 따르면 내년 물동량은 2억790만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올해보다 3.8% 늘어나지만, 컨테이너 선복량은 2970만TEU로 같은 기간 6.8% 늘어난다. 물동량 대비 선박 증가로 향후에도 낮은 운임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뜻이다.
팬오션의 올해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79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4.4% 줄었다. 매출도 1조1116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39.5% 감소했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팬오션이 HMM 인수 과정에서 하림그룹 내 유일한 해운회사로 주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HMM 인수 과정에서 유동성 확충이 필요하며, 팬오션 재무구조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지난 3분기 예상치를 밑돈 실적을 기록한 팬오션에 대해 "현재 주가는 저평가됐지만 불확실성 해소를 확인할 시점"이라며 목표주가를 기존에 비해 8%가량 낮춰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