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기현 지도부가 인요한 혁신위원회의 '친윤(親윤석열) 주류 희생' 요청에 한달 넘도록 침묵하고 있다. 당 지도부 일각과 비주류에선 '혁신안 수용'부터 시작해 김기현 대표 등에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4일 국회에서 당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혁신위 안건이 보고 안 됐다"며 "혁신위가 어떤 형태로 보고할지 정리가 돼서 요청이 오면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인요한 혁신위가 지난달 3일 권고했던 '당 지도부·대통령 측근·스타 중진 총선 용퇴 또는 험지출마'를 30일 정식 안건으로 의결한 데 대한 입장이다.
박 수석대변인은 거듭 "보고 요청 자체가 없었다"면서 "'(최고위가) 결정할 수 없는 내용'을 결정해달라는 건 본연의 역할과 범주, 성격을 벗어나는 부분이 있다"고 혁신위에 견제구를 날렸다. 그러자 당 비주류 출신 오신환 혁신위원이 공지를 통해 "최고위에 안건 상정 요청이 '없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며 "다시 목요일(7일) 최고위에 상정을 요청하겠다"고 반박했다.
오 혁신위원은 "혁신위가 혁신안을 의결하면 이후 최고위 보고 절차는 당 기획조정국이 준비해왔다"며 "3일 기조국에 '4일 최고위에 안건이 상정되는지, 누가 보고해야하는지' 의논하니까 '향후 혁신위 안건 모두를 모아 상정하라'고 했다는 얘기를 전달받았다"고 했다. 1~6호 혁신안을 개별이 아닌 일괄상정하란 요구가 지도부에서 하달됐을 것으로 추측되는 대목이다.
인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혁신위에 전권(全權)을 준다는 공언이 허언이 아니라면" 지도부가 '12월4일까지' 희생안을 수용하거나, 아니면 자신을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추천해달라고 했다. 공천 관련 혁신안들을 '공관위 소관'이라며 지도부가 불응한 데 대한 반발이다. 김 대표는 인 위원장에게 '자리를 목표로 활동해왔냐'는 취지로 맞받았다. 지도부에선 양론이 표출됐다.
장예찬 청년최고위원은 이날 CBS라디오에서 "혁신안 관철을 위해서라 해도 '공관위원장'이란 단어가 인 위원장 입에서 나오지 않았냐"며 거리를 뒀다. 반면 김병민 최고위원은 SBS라디오에서 "인 위원장은 정치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 메시지 하나로 모든 일들이 폄훼돼선 안 된다"며 "지도부의 책임있는 일원들이 혁신·쇄신 선점효과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지도부는 사실상 '혁신위 무시 전략'으로 일관할 태세다. 이번 주 첫 영입 인재 발표에 이어 다음주 공관위를 출범시키는 등 '총선 체제'로의 전환이 예고됐다. 장 청년최고위원은 '지도부가 총선 끝까지 가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그럴 것"이라며 비대위 전환론을 차단하는 한편 "이번주부터 인재영입을 시작해 총선을 위한 다양한 구상을 국민께 밝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주류의 비판은 거세졌다. 김근식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이날 CBS라디오에서 김 대표가 '울산 불출마' 수준의 입장도 내지 않았다며 혁신위에 '논개 역할'을 촉구했다. 또 혁신위 조기해산 대신 "최종 라운드가 열리지 않을까"라고 내다봤다.
서울 출마를 준비 중인 김영우 전 의원은 3일 SNS에 "강서구 선거 패한 날부터 혁신을 입에 달고 살더니 결국은 기득권 지키기 위한 꼼수 아니었냐"고 썼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이날 SNS를 통해 "인요한 혁신위는 당내 기득권 카르텔에 막혀 해체 위기에 있다"며 "당마저 사욕에 눈멀어 도와주지 않고 첩첩산중에서 나홀로 백척간두에 섰으니 다가오는 엄동설한을 어찌할꼬"라고 윤 대통령의 상황을 암시했다.
한기호·안소현 기자 hkh89@dt.co.kr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면담 전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