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제약업계에서 대형 의약품 유통·판매 파트너 교체가 이어지고 있다. 제약사들은 잘 팔리는 의약품 판매권을 새로 확보하고, 보유한 판매권은 빼앗기지 않기 위해 치열한 막후전쟁을 벌이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HK이노엔은 지난주 종근당에 '케이캡' 유통판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대신 보령과 협업하거나 자체 유통하는 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HK이노엔의 이번 결정은 내년에 케이캡을 중심으로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국내 P-CAB 계열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자사 영업력이 향상된 만큼 단독유통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캡 출시 초반에는 종근당의 영업력이 크게 도움이 됐지만 이제 수수료율이나 판매조건 등을 유리하게 따져볼 수 있는 상황이 됐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특히 내년에는 P-CAB 제제 시장에서 HK이노엔과 대웅제약 맞대결 구도가 제일약품 가세로 3파전 구도로 바뀔 전망인 만큼 더 집중력 있는 판매전략을 펴기 위한 움직임으로 읽힌다.
HK이노엔 관계자는 "(보령과의) 케이캡 유통계약은 계속 조율 중이고 연내에 확정해서 발표할 예정"이라면서 "단독유통이나 파트너사 변경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케이캡은 올해 약 1500억원의 원외처방 실적이 예상되는 HK이노엔의 주력 품목이다. 케이캡 유통은 보령이 하고, 구강붕해정은 이노엔이 판매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HK이노엔은 2021년부터 해온 MSD 백신 7종 유통·판매는 이달로 종료키로 결정했다. 가다실·가다실9(HPV 백신), 조스타박스(대상포진 백신), 로타텍(로타바이러스 백신), 프로디악스-23(폐렴구균 백신), 엠엠알(홍역·유행성 이하선염·풍진 혼합 바이러스 백신), 박타(A형 간염 바이러스 백신)가 대상 제품으로, 양사는 계약 만료 후 갱신하지 않았다. 그에 따라 일부 제품은 광동제약과 보령바이오파마가 판매할 예정이다. 폐렴구균 백신 '프로디악스23'은 보령바이오파마, 가다실·가다실9은 광동제약이 판매한다. 박타와 엠엠알2는 의약품 이커머스 기업 블루엠텍이 공동 유통을 맡는다. HK이노엔은 계약 종료 후 다른 공동판매 의약품으로 매출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가 공동판매 중인 제품은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당뇨치료제 '시다프비아', 한국로슈의 인플루엔자 치료제 '조플루자'가 있다.
제일약품은 최근 한국노바티스와 안과질환 9개 품목 국내 독점판매 및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내년 1월부터 녹내장 관련 6가지 품목과 결막염 관련 3개 품목을 공급하게 된다. 고안압증과 및 개방각 녹내장 치료제 '엘라좁' '심브린자' '아좁트' '트라바탄' '이즈바' '듀오트라브'와 알레르기성 결막염 치료제 '파제오' '파타데이' '파타놀'이 대상이다. 이들 품목은 지난해 250억원의 국내 매출을 기록했다. 특히 엘라좁은 국내 녹내장 점안액 복합제 시장 점유율이 14%에 달한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연간 처방액 1000억원 내외 대형 의약품 유통권을 확보하면 기업 매출이 크게 늘어나는 만큼 기업들이 계약권을 따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면서 "자체 개발 신약으론 외형 성장의 한계가 있는 만큼 이런 움직임은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민성기자 kms@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