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앞두고 주요정책 추진 희비
폐기물연구시설 등 민감한 이슈
첫발도 못 내딛고 기약없이 표류
신용사면·재건축 완화와 대조적
4월 총선을 앞두고 주요 정책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표가 되는 정책은 가속도가 붙는 반면 중요하지만 표에 부담이 되는 정책은 기약 없이 표류하고 있는 모습이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특별법(고준위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정부가 추진하는 '연구용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지하연구시설' 건설도 첫 발을 내딛지 못한 채 삐걱거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예정됐던 부지 선정 절차를 시작조차 못하고 해를 넘겼고, 이마저 4월 총선 이후로 사실상 연기됐다.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고준위폐기물이라는 민감한 이슈를 공론화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총선 이후로 부지 공모를 늦추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하루가 멀다하고 발표되는 여권의 선심성 정책들과는 대조적이다.
17일 정부와 원자력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다부처 사업으로 추진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지하연구시설' 부지 공모가 지연되고 있다.
당초 정부는 지난해 10월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부지 공모를 해서 올 상반기 최종 확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공모 시 선정 요건 등 세부 사항을 놓고 전문가 이견과 원자력진흥위원회 미개최 등의 이유로 해를 넘겼다. 관련 기관에 따르면 1분기 중 공모 착수도 현재로선 어려운 분위기다. 공모 착수를 의결해야 하는 원자력진흥위원회 개최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하다.
한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고준위 폐기물은 지역 차원에서 매우 민감한 이슈고, 선거용으로 쟁점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정부가 총선 이후로 공모 진행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총선 이전에 부지 공모에 나설 경우 지역의 반핵단체들이 나서서 고준위 폐기물 지하연구시설 유치에 반대하며 이를 정치 쟁점화하면 지역 표심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준위 폐기물 지하연구시설 부지 공모는 경북도와 전남도, 부산시 등 원전을 보유한 지자체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연구시설은 향후 선정될 고준위 방폐장과 유사한 환경 조건에서 사용후핵연료 처분을 위한 시스템 성능과 안전성 등을 연구하는 곳이다.고준위 방폐장과는 별개로 지어지는 연구목적 시설이고,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준위 방폐장과 차이가 있다 스웨덴, 스위스, 프랑스 등도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앞서 심층 처분 기술 확보와 안전성, 실증 등을 위해 처분환경과 유사한 연구시설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고준위 폐기물 지하연구시설 구축사업은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주관해 올해부터 2031년까지 총 5138억원을 투입해 추진된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부지에 대한 현장조사를 거친 후 2029년 착공해 2031년 가동하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5월 건설 공모에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8개월이 지나도록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원자력진흥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위원 일부가 바뀌고 위원 간 일정 조율이 쉽지 않아 이달중 개최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2월 중에는 위원회를 개최할 계획인데, 위원회 의결을 거쳐도 두 달 간 준비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4월 이후에나 공모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반면 여권은 최근 290만명 신용사면과 취약층 전기료 인상 유예,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금융투자세 폐지, 자영업자 제2금융권 이자감면, 주식 공매도 금지 등의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하나같이 표와 직결된 것들이다.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서민 등 취약층 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민의 이해와 직결돼 있다. 총선용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이준기·한기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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