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영풍·MBK파트너스(이하 MBK) 공개매수 가격 인상이 MBK에 이득을 가져다 주는 구조라며 '배임' 압박 수위를 높였다. 공개매수가가 올라갈수록 MBK 콜옵션 행사 가격이 떨어지는 구조로, 영풍의 핵심자산을 헐값에 떠넘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MBK 영풍과의 콜옵션 행사가격이 고정돼 있다며 즉각 반박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쩐의 전쟁'으로 치닫는 양측 경영권 분쟁에서 고려아연이 '공개매수가 추가 인상'이라는 카드를 꺼낼지도 관심거리다. MBK 입장에서는 인수 후 매각이 따라온다는 점에서 공개매수가 인상이 고민거리지만, 콜옵션 계약에 따라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려아연의 '배임' 카드가 주효할 지 주목된다.
고려아연은 7일 자료를 내고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진행하고 있는 영풍·MBK의 주주간 계약이 영풍 주주와 회사의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에 기반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며 "사실로 밝혀질 경우 주주 간 계약 무효와 이에 기반한 공개매수마저 원천 무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려아연은 "MBK 인수비용을 최초 공개매수가로 공개매수에 최대 규모로 성공했다고 계산하면 약 3조2600억원"이라며 "이 비용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계약했다는 가정 하에, 공개매수가를 75만원으로 올리면 콜옵션 주당행사가는 약 50만원, 공개매수가 83만원시 주당행사가는 39만원으로 낮아진다"고 분석했다. MBK에만 헐값에 고려아연 지분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불공정 행위이자, 영풍에 가장 중요한 자산을 헐값에 넘기는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행위라고 고려아연은 날을 세웠다.
별도재무제표 기준 영풍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려아연 지분 절반 이상을 처분하는 내용 등의 경영협력계약을 체결하면서 적법하고 정당한 경영 판단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 자체도 문제라고 고려아연은 지적했다. 고려아연은 "이를 MBK에 헐값에 떠넘기고 그 이익도 MBK가 얻도록 한 것은 영풍에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중대한 위법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며 "장형진과 영풍 이사들은 업무상 배임 등 형사책임과 손해배상 등 민사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앞서 영풍정밀은 장형진 영풍 고문과 사외이사 3인, 김광일 MBK 부회장 등을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영풍정밀은 MBK·영풍 연합이 경영협력 계약·금전 소비대차 계약에 근거해 이번 고려아연 공개 매수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효력을 정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MBK는 해명자료를 내고 "콜옵션 행사가격은 고려아연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 합의된 가격으로 고정돼 있다"며 "공개매수가격이 인상되면 인상된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해야 하는 영풍·MBK 모두에게 매수수량에 따라 비례적으로 부담이 된다"고 설명했다. MBK는 같은날 오후에도 "콜옵션 행사 가격은 고정돼 있고 공개매수 가격에 연동하지 않는다"고 재차 공지했다.
재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번주 중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현 83만원에서 추가 인상 여부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은 우선 베인캐피탈이 지분 2.5%, 고려아연은 자사주 15.5%를 각각 취득하기로 했다. 고려아연 측의 매입금액은 최대 3조1000억원이다.
이에 영풍·MBK는 지난 4일 공개매수가를 고려아연과 같은 83만원으로 인상하고, 최소매수수량 조건을 취소했다. 김광일 MBK 부회장은 "1주가 들어오든, 300만주가 들어오든 모두 사들여 반드시 고려아연의 기업 지배구조를 바로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아연 입장에서는 승기를 잡기 위해 공개매수가 인상을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을 지켜야하는 입장인 만큼 가능한 자금을 최대한 끌어모아 자사주 매입에 활하거나, 또 다른 우군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콜옵션 계약 여부에 따라 MBK의 득실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 콜옵션 행사 가격이 고정돼 있다면 인수 후 재매각 시 MBK 입장에서도 부담이 크지만, 그렇지 않다면 영풍이 이를 떠앉는 구조가 된다.
고려아연이 "MBK와 영풍은 콜옵션 가격과 산정방식을 주주와 투자자들, 당국자들 외부 이해관계자들이 오해할 여지가 없도록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한편 최창규 영풍정밀 회장, 최창영 고려아연 명예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출자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제리코파트너스는 이날 이사회를 열고 영풍정밀 공개매수가를 올리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결론짓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영풍정밀은 고려아연 지분 1.85%를 쥐고 있어 플러스-마이너스(±) 감안시 3.7%의 지분율 효과를 가진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은 결국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각에서 수요를 얼마나 끌어들이는 지가 관건인 만큼 이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