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제조사인 ASML의 실적은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중요한 지표로 여겨지는데, 이번 발표로 '반도체 겨울'에 대한 우려가 재차 커지면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를 둘러싼 낙관론과 비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발표된 ASML의 3분기 매출은 74억7000만유로로, 블룸버그가 집계한 추정치인 53억9000만유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날 엔비디아 주가는 4% 이상 급락했고 ASML의 미국주식예탁증서(ASML) 는 16% 폭락했다.
비관적인 시각에서는 ASML의 실적 부진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수요 둔화를 반영한다고 본다. 소비 전반이 위축되면서 전자 기기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내내 미국증시 랠리를 이끈 인공지능(AI) 기술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반도체 업계가 과잉 투자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지난 8월 초 전 세계 증시 폭락을 기록한 '블랙 먼데이' 역시 AI 투자에 대한 회의감이 촉발한 바 있다.
반면 ASML의 실적 부진이 일시적인 조정 과정이며 장기적인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는 계속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가운데 오는 17일(현지시간)로 예정된 TSMC의 실적 발표는 올 하반기 반도체 시장의 방향성을 결정지을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만약 예상보다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다면, 시장의 투자 심리는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 반대로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반도체 겨울'이 현실화될 거라는 우려가 재차 커질 수 있다.
우선 월가에서는 TSMC의 2024년 3분기 실적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AI 칩 수요 급증에 따라 TSMC의 분기 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4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TSMC는 올해 9월 2518억7000만 대만달러(약 10조546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른 올해 3분기(7~9월) 매출액은 7596억9200만 대만달러(약 31조8010억원)로 추산되며, 분기 기준 역대 최고치다.
ASML과 TSMC의 실적 차이는 기본적으로 각사의 비즈니스 구조에서 기인한다.
반도체 장비 제조사인 ASML 실적은 반도체 제조사들의 장비 투자 계획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업계가 장기적인 수요 불확실성과 투자 축소로 장비 구매를 지연하거나 줄일 경우, ASML의 실적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반면 TSMC는 반도체를 실제로 제조하는 파운드리로, 애플이나 엔비디아 같은 대형 고객사의 주문에 따라 칩을 생산한다. 특히 AI와 고성능 컴퓨팅 칩에 대한 수요가 전년 대비 급증한 가운데 수혜를 보고 있다.
업계에선 AI 반도체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군이 전반적인 성장을 견인할 수 있지만, 특정 분야에서의 공급 과잉이나 수요 둔화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의 크리스 로저스 "AI 및 ASIC(응용 특화 집적 회로) 칩의 성장세가 두드러지지만, 메모리 칩과 통신용 반도체는 상대적으로 낮은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건스탠리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AI와 관련된 반도체 수요는 주요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D램과 일반 메모리 반도체는 공급 과잉과 수요 감소로 인한 단기적인 하락 압력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신하연기자 summ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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