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칼럼] 기업의 전기요금은 소비자 몫이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410/2024102902102269058001[1].jpg "[이덕환 칼럼] 기업의 전기요금은 소비자 몫이다")
그런데 한 해 약 4조6000억원의 추가 수익은 한전의 이자 비용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6차례나 반복한 찔끔 인상으로는 한전의 경영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결국 정부는 내년에도 불가피하게 전기요금을 올리게 될 것이라고 실토했다.
산업용 전기요금만 6.9% 인상했던 작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전력 사용량이 53.2%에 달하는 산업용만 올리기로 결정했다. 가정용·일반용·농사용은 이번에도 역시 동결했다. 서민 경제에 미치는 부담 때문이라는 변명은 핑계일 뿐이다. 사실은 정부가 국민을 설득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번 인상으로 지난 정부에서 kWh당 105.5원이었던 산업용 전기요금은 최대 181.8원으로 무려 72.3%나 올랐다. 가정용 인상률 37.2%의 2배에 가까운 폭탄급 수준이다.
특히 많은 양의 전기를 사용하는 대기업·중견기업에 적용되는 '산업용(을)'은 kWh당 16.9원(10.2%)을 올리고, 경기침체에 따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부과되는 '산업용(갑)'은 kWh당 8.5원(5.2%)을 인상했다. 물론 대기업·중견기업의 전기요금을 중소기업보다 더 많이 올려야 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정부가 한전의 부실을 대기업·중견기업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대한상의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이 "성장의 원천인 기업활동에 부담을 주고, 산업 경쟁력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규모 생산시설 운영으로 전기 사용량이 많은 상위 20대 기업의 전기요금 부담은 이번 인상으로 1조2000억원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다음으로 전력 소비가 많은 철강·유화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중국의 저가 제품 탓에 국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쉽게 견디기 어려운 시련일 수밖에 없다. 수출 상품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다는 정부의 주장은 통계의 왜곡일 뿐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가정용(kWh당 149.75원)보다 더 높아진 것도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명백한 비정상이다. 이번 산업용 전기요금의 인상으로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지게 됐다. 기업이 값싼 전기를 펑펑 낭비하면서 그 비용마저도 서민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일부 전문가와 언론의 지적은 명백한 억지다.
사실 모든 국가에서 산업용 전기에 낮은 요금을 부과하는 데는 분명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 모든 상품이 그렇듯이 전기도 대량 구매에는 할인을 해주는 것이 원칙이다. 송전 효율이 좋은 고압의 전기를 사용하는 기업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옥외 변압기를 한전이 설치·관리해 주는 가정용과는 달리 대규모 생산시설에서 사용하는 변압기와 배전설비의 설치·관리 책임도 기업의 몫이다.
기업의 전기요금은 기업주가 개인적으로 부담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오히려 기업의 전기요금은 100% '원가'에 반영되어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기업의 전기요금이 사실은 모두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결국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면 소비자의 부담은 늘어나고, 기업의 경쟁력은 떨어지게 된다. 모든 기업이 전기를 포함한 에너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전기를 펑펑 낭비하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정부가 취약계층에 대한 전기요금 지원 방안을 포기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비용은 전기요금이 아니라 정부의 예산으로 충당하는 것이 마땅하다.
가정용·일반용·농사용 전기요금 인상을 무작정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전기요금 인상은 생산이 어려운 전기의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는 최선의 대책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서민을 지켜준다는 '알량한 포퓰리즘'이 오히려 서민에게 더 큰 부담을 안겨주게 된다. 전기요금 책정에서 정치적 포퓰리즘을 차단하기 위한 법정 독립기구를 설치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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