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는 '비상계엄'과 그에 따른 '탄핵 정국'으로 인해 대한민국호가 가라앉고 있다. 그런데도 여야는 '계엄 사태'가 발생한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제대로된 위기 수습책을 내놓지 못하고 여전히 정쟁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조기 퇴진에는 의견 일치를 보고 있지만, 시기와 방법론을 둘러싸고 이견이 크다. 퇴진 시기에 따라 차기 대통령 선거일이 달라져 선거구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질서있는 조기 퇴진'을 내세워 가능한 한 대선일을 늦춰보자는 심산인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어떻게든 즉각 퇴진을 성사시켜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형량이 확정되는 시점 이전에 대선을 치르자는 속셈이다.
국민의힘 정국안정화 태스크포스(TF)는 '3월 퇴진 후 5월 대선' 또는 '4월 퇴진 후 6월 대선' 등 두 개의 시나리오를 담은 정국 수습 로드맵 초안을 마련, 10일 한동훈 대표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TF가 제시한 시나리오는 그동안 친한계 일각에서 요구해온 '탄핵에 준하는 조기 하야'에 부합한다. 하지만 친윤계는 임기 단축 개헌으로 내후년 지방선거와 조기 대선을 동시 실시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어 윤 대통령에 대한 2차 탄핵안 표결이 예고된 오는 14일 본회의 이전 최종 로드맵이 제시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국민의힘은 추경호 원내대표 후임을 둘러싸고 친윤과 친한 간 당권 갈등 양상이다. 친윤계 중진들이 권성동 의원 추대로 의견을 모았지만 한동훈 대표는 중진이 결정할 게 아니다고 반대했다.
민주당은 '게엄 정국'을 빌미삼아 닥치고 탄핵·특검·고발을 추진중이다. 14일 윤 대통령 탄핵안을 처리할 예정인 민주당은 10일 상설특검 수사요구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윤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과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 한덕수 국무총리와 추경호 전 원내대표,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을 수사 대상으로 적시했다. 이날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에선 내란 특검법도 통과됐다. 상설특검의 경우 윤 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하지 않으면 가동이 불가능한 만큼, 이와 별개로 일반 특검을 발의한 것이다. 네번째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12일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윤 대통령이 조기 퇴진하면 권한 대행 1순위인 한덕수 총리는 물론 박성재 법무부 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탄핵도 추진 중이다. 아예 무정부 상태를 만드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의도 대통령'이라는 얘기를 들어왔던 이재명 대표의 권한은 한층 막강해진다.
여야의 행보는 '대권 잡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달 공직선거법 위반 1심 재판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 대표가 2·3심에서도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된다면 의원직을 상실하고 5년동안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대선 출마 길이 막히고, 민주당은 지난 대선 비용으로 국고에서 보전받은 434억원도 토해내야 한다. 선거사범 항소심과 상고심을 각각 3개월내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는 공직선거법대로라면 내년 5월께는 이 대표의 차기 대선 출마 여부가 결판난다. 민주당이 즉각 탄핵을 외치는 건 이런 일정을 감안한 것이다. 탄핵안이 이달 중 가결된다면, 이 대표의 3심 이전에 차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계산이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안 심사는 최장 180일로, 만약 인용 결정이 나면 60일 뒤에 대선이 치러진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2016년 12월 9일에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안이 가결돼 이듬해 3월 10일에 헌재가 파면을 선고했고 5월 9일에 대선이 치러졌다.국가적 위기 상태에서도 수습보다는 '대권 잡기'에 혈안인 여야의 모습은 개탄을 넘어 한심할 뿐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성남FC 뇌물'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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