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44년만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 국회에는 계엄군이 진입했다. 총을 든 군인들은 창문을 깨고 국회 본관에 난입했다. 의원 보좌진들은 국회 비품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소화기를 뿌리며 대응했다. 이 모든 장면은 계엄령 선포 직후 이미 국회에 들어가 있던 언론 카메라를 통해 유튜브 등에서 생중계됐다. 신속하게 모인 의원들은 첫 계엄 선포 후 155분만에 본회의를 열고 비상계엄 해제를 결의했다. 계엄이 해제된 그 날 오후 국회는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죄 혐의로 탄핵안을 발의했다.
전반적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 비상계엄이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미 몇 달 전부터 정부가 계엄을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를 받았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물론 대부분의 국민들까지도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치부한 이유 그대로기도 하다. 군소 야당 없이 민주당 하나만으로도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의석을 보유하고 있고, 요즘 같은 시대에 방송을 완전히 틀어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본인의 행동에 대한 이유로 들고 나왔다. 본인의 계엄 선포는 '거대 야당의 망국적 행태'를 상징적으로 알리고 '헌정 질서'와 '국헌'을 지키고 회복하기 위한 수단일 뿐, 국회를 해산시기거나 기능을 마비할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본인이 정말 국회 기능을 마비시킬 것이었다면 건물에 대한 단전·단수 조치나 방송 송출 제한 등을 하지 않았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계엄 후 혼란에 빠질 국회와 국민의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의 병력을 잠시 투입'한 게 어떻게 폭동이 될 수 있냐며 2시간짜리 내란이 말이 되냐고도 했다.
한국에서 내란죄가 성립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 대통령이다. 1997년 대법원은 전 전 대통령 등 신군부가 1980년 비상계엄을 확대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한 데 대해 반란과 내란수괴죄를 적용해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당시 비상계엄이 국헌 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인지를 판단해 이를 범죄행위로 판명했다.
가장 최근에 내란죄가 국민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2013년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다. 2015년 대법원은 이 전 의원의 내란 음모 혐의에는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이 전 의원이 가까운 장래에 구체적인 내란 결의를 유발하거나 증대시킬 위험성이 충분하다"는 이유로 내란선동 혐의에는 유죄를 선고,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이 전 의원의 유죄 선고는 결국 통합진보당의 해산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과 국회는 움직이고 있다.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찰은 각각 대통령을 비롯한 계엄 관계자들에 대한 내란죄 혐의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실패로 돌아갔지만 대통령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하기도 했다. 국회는 지난 7일 여당 의원 대다수의 표결 불참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폐기된 이후 지난 12일 탄핵안을 재발의했다. 민주당 등 야6당은 2차 탄핵안에는 윤 대통령의 계엄선포권 남용과 형법상 내란죄 혐의를 더욱 강조했다. 여당 의원들의 동의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표결이 성립되려면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여당 의원의 표가 최소 8표는 필요한 상황이다. 탄핵안 표결은 오는 14일 오후 5시 진행된다.전혜인기자 hy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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