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박한나의 배터리ON'은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배터리 분야의 질문을 대신 해드리는 코너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을 비롯해 배터리 밸류체인에 걸쳐 있는 다양한 궁금증을 물어보고 낱낱이 전달하고자 합니다.
"최근 CATL과 고션하이테크 등 중국 배터리기업들이 연이어 유럽과 아프리카 등에 해외 생산거점을 확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특히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고관세 정책을 펴는 유럽에서 완성차업체들과의 합작 투자가 어떤 이점을 제공하나요?"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해외 진출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중국 자국시장이 포화인 데다 미국에 이어 유럽마저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수출길을 막자 유럽 현지 생산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세계 1위 배터리 생산업체인 중국 CATL는 지난 10일(현지시각) 세계 4위 다국적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와 스페인 북동부 사라고사에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을 설립하기로 했습니다. CATL과 스텔란티스는 50%씩 공동 출자해 41억유로(약 6조1683억원)를 투자할 계획입니다.
양사의 스페인 LFP 합작공장은 최대 50GWh 규모로 지어질 예정입니다. 이는 50kWh 배터리일 경우 약 10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양입니다. 스페인 정부의 각종 지원으로 2026년 말부터 가동될 예정입니다.
CATL은 이번 공장 건설로 유럽에 총 세 개의 생산거점을 구축하게 됐습니다. CATL은 독일 튀링겐에 연산 14GWh 규모의 LFP 공장을 가동 중이며, 지난해 10월에는 연산 100GWh 규모의 헝가리 공장을 착공해 내년 생산에 돌입할 예정입니다.
이번 합작 투자 결정은 양사가 유럽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동맹입니다. CATL이 유럽연합(EU)의 전기차 폭탄 관세를 피하기 위해선 유럽 현지에서 직접 배터리를 생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텔란티스 역시 경영 위기를 돌파할 파트너가 절실한 만큼 양사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입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최고 관세율 35.3%를 부과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30일부터 5년 기한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기존 일반 관세율 10%에 7.8∼35.3%p의 추가 관세가 부과돼 최종 관세율은 17.8∼45.3%가 됐습니다.
스텔란티스는 실적 부진을 돌파할 전기차 보급 모델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CEO(최고경영자)는 이달 1일 중국에서의 판매 부진과 전동화 전환 지연 책임 등의 경영 악화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습니다.
이번 동맹으로 스페인 합작 공장에서 생산되는 LFP 배터리는 유럽의 좁은 도로와 골목길 특성을 반영해 소형 전기차와 소형 SUV 등에 중점적으로 탑재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스텔란티스는 지프, 시트로엥 등 15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가격 강점이 있는 LFP를 무기로 소형 전기 SUV 라인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할 계획입니다.
양사가 생산기지로 선택한 스페인은 모로코와 인접해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생산기지라는 평가입니다. CATL은 광물자원이 풍부한 모로코에 100% 양극재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스페인과 모코로는 지브라르탈 해협으로 서로 매우 가깝게 마주하고 있어 원자재 조달 등 공급망 구축에 이점이 있습니다.
또 스페인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아 제조업의 허브로 자리 잡은 상황입니다. 노조의 강한 영향력과 높은 노동비용 때문에 생산 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독일과 같은 다른 유럽 국가들 대비 비용 효율적인 제조 기반을 구축하기 적합한 위치입니다.
무엇보다 CATL의 스페인과 모코로를 잇는 공급망 구축은 유럽시장 접근성 보장뿐 아니라 전기차 시장의 잠재적 성장 지역인 중동과 아프리카 시장으로의 진출을 위한 전략적 거점 기능까지 가능합니다. 특히 아프리카는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이는 신흥 시장으로 예상보다 전동화 속도가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계 8위인 중국 배터리업체 고션하이테크도 이달 12일(현지시각) 이사회를 열고 '유럽 슬로바키아 신에너지 배터리 슈퍼팩토리 투자건설 안건'을 심의하고 통과시켰습니다. 슬로바키아 공장은 연산 20GWh 규모의 고성능 리튬배터리 생산시설로 총 12억3400만유로(약 1조8603억원)를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같은 날 고션하이테크는 아프리카 모로코에도 총 12억8000만유로(약 1조9296억원)를 투자해 연산 20GWh 규모의 생산거점을 짓기로 했습니다. 모로코는 유럽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물류 비용과 시간 절감이 가능한 데다 미국과 EU뿐 아니라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어 수출에 유리하다는 평가입니다.
고션하이테크는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아직 높지 않지만 중국 업체 중 해외 사업을 가장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현재 독일 괴팅겐공장뿐 아니라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에 있는 프리몬트공장과 태국, 인도네시아에서 4개의 팩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베트남 셀공장의 추가 가동도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에 발표한 슬로바키아 공장이 2026년 완공되면 지난해 6월 가동을 시작한 독일 괴팅겐공장에 이은 유럽의 두 번째 생산기지가 됩니다. 모로코 라바트공장 역시 아프리카 첫 거점이지만 전체 해외 생산거점 중에서 일곱 번째 기지입니다.
고션하이테크는 이 같이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한 덕분에 올해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5.6% 증가한 251억7500만위안을 기록했습니다. 모회사의 귀속 순이익 역시 4억1200만위안으로 전년 대비 41.11% 늘었습니다.
CATL과 고션하이테크 외에도 대다수 중국 배터리기업들도 포화인 자국 시장을 넘어 미국과 유럽이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수출길을 막자 제 3국인 아프리카에서 활로를 찾고 있습니다. BYD는 케냐에 배터리 모델 3종인 돌핀과 씰, 아토를 출시했으며, 체리, 지커, 장화이 등 중국 자동차업체들은 아프리카 알제리에 생산 거점을 구축 중입니다.
비중국 시장에서의 한·중국 배터리 기업간 글로벌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 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3사의 올해 3분기 매출액 기준 세계 시장점유율은 23.4%로 전분기 대비 2.7%p 감소했습니다. 반면 중국 CATL과 BYD는 각각 35.2%와 17%로 1위와 2위를 기록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텃밭이던 유럽 시장의 경쟁은 격전지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SNE리서치 기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EU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은 2021년 70.6%에서 올해 1분기 51%로 줄었습니다.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 22.6%에서 45%로 상승 추세로 격차를 지속적으로 좁히고 있습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유럽의 환경 규제 강화가 전동화를 선택이 아닌 필수로 만드는 주요 요인"이라며 "완성차업체들이 하이브리드 차량만으로는 강화되는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충족시키기 어려워지고 있어 전기차로의 전환은 단순한 시장 추세가 아닌 환경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필수적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최근 일본 도요타를 비롯해 완성차업체들이 전동화 투자를 빠르게 진행하는 것은 캐즘 기간에 필요한 투자를 진행하고, 공급망과 생산 시설을 확보하는 전략"이라며 "지금 휴지기 동안의 투자가 향후 3년 후 예상되는 시장 회복기에 본격적인 생산을 통해 시장 선점 효과를 극대화할 것으로 장기적 관점에서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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