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도래지 인접 입지 부적합
조류 퇴치 인력 4명 뿐 태부족
충분한 활주로 길이 확보 못해
방위각도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국토교통부가 30일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의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항공사고는 원인 규명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부상자와 유족들, 국민들의 슬프고 갑갑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원인을 추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번 참사의 정황을 토대로 추정하면 무안공항의 입지적 문제가 희생자를 많이 낸 요인으로 우선 꼽힌다. 무안공항은 동서남북 철새도래지 4곳에 둘러싸여 있다. 애초 공항입지로선 부적합했다. 사후 관리라도 만전을 기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조류 감지 및 퇴치 인력이 4명으로서 태부족했고, 사고 당일 근무인력마저 2명에 그쳤다. 김포공항(23명), 제주공항(20명), 김해공항(16명), 청주공항(8명)과 비교된다. 무안공항 근처가 철새도래지여서 이들 공항보다 오히려 인력을 더 배치했어야 했다. 게다가 열화상 탐지기나 조류 탐지 레이더를 갖추지 못하는 등 장비와 시설도 열악했다.
익명을 요청한 현직 조종사는 "무안공항은 새가 많아 버드스트라이크 가능성을 많은 사람들이 경고해왔다"며 "그러한 위험 요소들에 대한 보고가 제대로 이뤄졌고, 그에 대한 조치가 이뤄졌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거점공항으로서 충분한 활주로 길이를 확보하지 못한 점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다. 활주로가 300m만 더 길었다면 감속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고 기체가 폭발할 만큼 충격을 입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다. 무안공항의 활주로는 김포(3.6㎞), 김해(3.2㎞), 제주(3.18㎞)보다 훨씬 짧은 2.8㎞로 국제공항 규격에 못 미친다. 활주로 연장 공사가 4년째 진행 중이었으나 완료되지 않은 점도 안타까움을 키운다.
사고 항공기에 치명적 화를 입힌 것은 방위각(로컬라이저)과의 충돌 충격이다. 방위각은 항공기의 활주로 진입을 돕는 설치물인데, 무안공항은 콘크리트로 돼 있었다. 시속 200㎞ 속도의 항공기가 콘크리트 벽과 부딪히면 가공의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항공 전문가들은 방위각이 연성 소재의 고무나 수풀둔덕으로 등으로 만들어졌었더라면 이렇게까지 큰 충격은 입지 않았을 거로 입을 모은다. 주종완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도 "(방위각의)재질이나 소재에 제한이 있는지, 사고와 연관성이 있는지 면밀히 파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근영 한국교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도 피해가 커진 데 방위각이 원인이 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구조물에 항공기가 충돌하며 화재가 발생한 만큼 구조물 설치 위치와 소재 등이 규정에 따라 적절하게 설치됐는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 같다"며 "항공 안전은 '소 있고 외양간 고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만큼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고가 늘 그렇듯 어느 한 요인만이 참사 원인으로 지목되진 않는다. 여러 요인이 겹쳐 참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번 참사는 무안공항의 불리한 입지적 관리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공항이 들어설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요인도 간과할 수 없다. 이번 참사는 무안공항에 조속히 국제공항으로서 기능을 부여하려는 정치권과 정책담당자들의 조급증과 준비소홀에도 기인한다. 무안공항이 생긴지 17년 만인 지난 8일 처음으로 개설된 무안~방콕 국제노선에서 이번 사고가 일어났다. 국제노선 운영에 급급한 나머지 열악한 조류탐지팀과 짧은 활주로의 문제가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무안공항이 태생부터 문제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안공항은 1999년 김대중 정부시절 호남에도 국제공항이 있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지역출신 정치인들이 밀어붙여 탄생했다. 연간 992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추산했으나 지난해 이용객은 24만6000명에 그쳤다. 이용객이 없어 '활주로에서 고추를 말리는 공항'이라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현실이 이런데도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무안공항을 아시아나항공의 거점공항으로 육성하겠다"는 공약을 밝혔다. '공항 포퓰리즘'은 비단 무안공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도 몇몇 광역지자체들이 국제공항 건설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제주항공 7C2216편 사고 여객기의 블랙박스 2종을 모두 수거했다. 이를 분석하고 최종 원인을 밝히는 데는 6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기체 결함이나 정비 불량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은 점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30일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동일기종의 제주행 제주항공 7C101편에서도 이륙 직후 랜딩 기어 이상이 발견됐다. 기체 결함과 정비 불량의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종사의 과실도 배제할 수 없다. 전자적 기계적 결함 시에도 수동으로 랜딩기어를 내릴 수 있다. 조종실 음성기록장치(CVR)을 분석해 봐야 하겠지만, 이런 수동 조작을 조종사들이 시도했는지 규명돼야 한다.
항공사고라는 대형 참사에 선입견을 갖고 원인을 예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국제공항으로서 무안공항이 안고 있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희생자가 더 많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세종=송신용·양호연기자
hyy@dt.co.kr
30일 전남 무안군 무안종합스포츠파크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합동분향소에서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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