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EU집행위원회가 발표한 '경쟁력 나침반 보고서'에는 디지털 인프라 투자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이 담겼다. 이 보고서는 향후 5년간 EU 경쟁력 회복을 위한 집행부의 입법·정책 방향을 담아 주목받았다. 이 계획은 지난해 9월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작성한 '드라기 보고서'를 기반으로 마련됐다. 드라기 보고서는 혁신 격차 해소·탄소중립·경제 안보 등 3대 핵심 정책 구현을 위한 실현 방안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6G, 클라우드 컴퓨팅 역량에 대한 투자 등 최첨단 디지털 인프라에 대한 투자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네트워크 비용 공정분담을 골자로 하는 '디지털네트워크법'은 올 4분기 발의·시행될 예정이다. 이 법안에는 사업자간 망 이용대가 협상이 어려운 경우를 대비해 분쟁 해결 메커니즘을 도입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를 위해 2023년 10월 이 법안 추진을 발표한 유럽은 지난해 2월 디지털네트워크법 관련 백서를 발표하고,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하기도 했다. 네트워크 구축을 촉진하고 비용 절감을 위한 인센티브 개선도 목표로 삼았다. 해당 법안을 추진해온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재선해 2029년까지 임기가 이어지는 만큼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망 이용대가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인터넷제공사업자(ISP)간 오랜 갈등 요소다. 통신사는 빅테크 기업들이 대규모 트래픽을 유발하면서도 망 구축·유지 비용을 분담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빅테크 기업들은 네트워크 중립성 등을 근거로 추가 비용 분담에 반대했다. 전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약 70%가 구글, 메타 등 글로벌 CP로부터 발생한다. 특히 향후 AI가 활발해지면 빅테크 산업 영역 확산으로 글로벌 CP 트래픽 유발이 막대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구글, 넷플릭스, 메타의 트래픽 비중은 지난 2023년 기준 42.6%에 육박한다.
이에 따라 EU는 망 이용대가 분쟁을 조정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 합리적인 비용 분담 체계를 구축한다는 입장이다. 보고서에서는 디지털네트워크 법안을 통해 미래의 디지털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시장 인센티브를 개선하고, 부담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이 보고서의 기반이 되는 드라기 보고서는 ISP의 투자 여력 확보를 위해 대형 CP간 망 이용계약과 인프라 비용 분담에 대한 계약을 정의하도록 제안했다. 특히 이들 기업이 협상에 실패할 경우 경쟁 당국의 최종 중재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외에도 'EU 통신 단일 시장 형성'과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고려하면 올 4분기 발의·시행 예정인 디지털네트워크법에 망 이용대가 정의와 분쟁 해결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상을 갖추기 위해 법제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올해 업무보고에 망 이용계약 의무화, 망 이용환경 실태조사 도입 등 정책 방향을 명시했다. 22대 국회에서는 망 이용계약 체결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안이 2개 발의돼 있다.
이와 함께 최근 미·중 AI 패권 경쟁이 가속하면서 유럽 또한 디지털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 촉진에 나선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은 'AI 기가팩토리' 및 'AI 적용 전략'을 통해 주요 산업에 AI를 도입하면서 디지털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 이 법안들은 이르면 올 4분기, 내년 1분기 사이 발의·시행될 예정이다. 집행부는 대규모 AI 훈련을 할 수 있는 AI 기가팩토리 건설 이니셔티브에 착수할 예정이다. 앞서 EU는 유럽 전역에 초대형 AI 모델 훈련에 특화된 AI 기가팩토리를 최소 네 곳에 구축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를 위해 유럽은 'EU 클라우드·AI 디벨로프먼트 액트'를 제정하고, AI 학습을 위한 민간·공공 데이터 공유 촉진을 계획하고 있다. 이 법안으로 AI 혁신을 가속하고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EU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EU의 행보는 글로벌 디지털 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망 이용대가가 대형 CP와 ISP간 협상력 차이에 기인하는 만큼 AI 시대 더 큰 트래픽이 발생해 '무임승차자' 발생의 우려가 커지는 만큼 제도를 마련해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내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MWC 2025에서 전세계 정보통신 수장, 업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정책 마련 논의의 장을 열고 글로벌 스탠다드 정립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현실적 위치, 국가간 협상 문제 등을 고려하면 아시아나 글로벌 정책 연맹이 만들어져야 EU만큼의 협상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나인기자 silkni@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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