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전날(25일) 자신의 탄핵심판 최후 변론에서 던진 '개헌카드'가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권 원로 모임은 범국민 개헌 촉구 서명 운동 발대식을 열기로 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 개헌 의사를 밝힌 것을 거론하며 조속히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진정성을 두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전직 국회의장·국무총리·당 대표들로 구성된 '나라를 걱정하는 원로모임'은 26일 여의도 한 식당에서 간담회를 열고, 다음 달 5일 서울역에서 범국민 개헌 촉구 서명 운동 발대식을 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는 정대철 헌정회장을 비롯해 박병석·정세균 전 국회의장, 이낙연 전 국무총리, 여야 각 정당 대표를 지낸 서청원·김무성·손학규·황우여 전 대표 등이 참석했다.
서청원 전 대표는 "대통령이 헌재에서 국민 뜻을 받아서 개헌하겠다는 얘기를 한 것은 다행스럽고 우리가 다 공감한다"며 "아쉬운 것은 구체성이 없다. 국민의힘이 국민에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야당에 충격이 간다"고 말했다.
손학규 전 대표는 "어제 윤 대통령의 최후 발언을 보니 '개헌의 물꼬가 조금 트일 수 있나'라고 생각했다"며 "만약 탄핵이 기각돼 복귀하면 거국 내각을 확실히 만들어야 한다. 그런 상황이면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어느 정도 양보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어제 마침 윤 대통령이 전향적인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오늘부터 여야가 합의해서 탄핵 재판을 중단시켜야 한다"며 "큰 문제를 야기한 윤 대통령은 사임하고 여야가 대화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정세균 전 의장은 "대통령이 모처럼 의미 있는 발언을 했지만 불행하게도 국민들의 신뢰를 많이 잃어버린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효용이 없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며 "빨리 개헌하는 것이 대한민국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낙연 전 총리는 "지금의 권력 충돌, 국가 파탄이 '87 체제'의 장송곡 같다"며 "개헌하지 않으면 죽은 체제 위에 새로운 권력이 탄생한다. 도덕성이 매우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권력자가) 된다면 지금보다 더 심한 파탄이 오지 말란 법이 없다"고 말했다.
정 회장 등 일부 원로들은 간담회 후 우원식 국회의장을 찾아 논의 내용을 전달하며 국회에 조속한 개헌 논의를 촉구했다. 우 의장은 개헌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논의 착수 시점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 및 조기대선 가능성 등 정국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그동안 개헌에 적극적 입장이었던 우원식 국회의장은 "일단 연구해보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개헌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가는 상태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전날 논평에서 윤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에 대해 "내란범이 다시 권력을 쥐고 헌정을 주무르겠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비명계 대권주자들은 조속한 개헌을 촉구하고 있는 상태다.
여당은 대체적으로 개헌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전날 논평을 내고 "대통령이 개헌과 정치개혁을 마지막 사명으로 생각하고 잔여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한 부분을 높게 평가한다"며 "87년 체제 극복 등 정치 개혁 화두를 던지며 진정성 있게 개헌을 강조한 부분도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27일 최다선(6선)인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위원장을 맡는 개헌특위를 발족한다.
윤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의 현실성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갈린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이 5년 단임제이다보니 역대 정권에서도 막판에 레임덕 현상이 일어나고 지지율이 떨어지면 그 때마다 나왔던 게 개헌카드"라며 "이번에는 개헌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헌이라는 게 다음번 정권에 대한 권력을 얘기하는 것"이라며 "논의 구조속에서 국민이 통합할 수 있는 함의를 가질 수 있다"고 부연했다.
반면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처음부터 개헌에 뜻이 있었다면 지난해 12월 8일 당내에서 질서있는 퇴진이 논의될 때 개헌얘기를 했었어야 한다"며 "논리적으로 맞지도 않고 진정성도 없다"고 평가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도 "일종의 '출구전략'으로 헌법재판소가 수용할 것을 전제로 제안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대국민 메시지인데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김세희·안소현기자
saehee0127@dt.co.kr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본인의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최종 의견 진술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헌법재판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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