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우리를 지배하는 `근대적 시간`의 역사](http://contents.dt.co.kr/images/202502/2025022702102369061001[1].jpg "[논설실의 서가] 우리를 지배하는 `근대적 시간`의 역사")
시간의 연대기
이창익 지음 / 테오리아 펴냄
한국 사회에서 근대적 시간 체계가 자리잡은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고려대 연구교수인 저자는 태양력이 채택된 1896년부터 일제강점기가 끝난 1945년까지, 시·분·초로 나뉘는 시간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포되었는지 깊이있게 탐구했다. 단순히 시간 개념의 변화뿐만 아니라, 이를 가능하게 한 사물들의 행로를 따라가며 한국 사회가 시간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지도 서술했다. 근대적인 시간은 50년이라는 장기적인 시간 동안 매우 느린 속도로 스며들었고, 책은 그 모습을 '슬로 모션'으로 보여준다.
책은 종, 오포(午砲), 사이렌, 시계, 라디오, 달력 등 시간과 관련된 사물들이 우리 역사에 등장한 과정과 의미를 연대기적으로 풀어낸다. 저자는 '정확한 시간'을 표방한 근대적 시간 체계가 단순한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통제하는 기능을 가졌다고 분석한다. 특히 라디오를 통해 시간 개념이 전국적으로 통일되면서 사람들이 동일한 시간 안에 갇히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사람들은 달력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근대에 접어들며 시·분·초 단위의 시간을 강박적으로 따르게 되었다. 현대인들을 압박하는 시간의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 시간이 단순한 자연적 흐름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산물임을 보여준다.
책은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간 개념을 새롭게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 시간을 둘러싼 근대적 질서가 형성된 과정과 그것이 남긴 영향을 촘촘하게 짚으면서 오늘날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사색을 유도한다. 방대한 분량과 철저한 문헌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책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철학적 사유를 자극하는 미시사 연구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시간을 둘러싼 통념을 깨고 싶은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