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와의 골육상잔 비극 노래한 '칠보시'(七步詩)
이뤄지기 어려운 신과의 사랑 다룬 '낙신부'(洛神賦) 남겨
"재주가 여덟말에 이를 정도로 높다"는 '재고팔두'(才高八斗)의 주인공
이뤄지기 어려운 신과의 사랑 다룬 '낙신부'(洛神賦) 남겨
"재주가 여덟말에 이를 정도로 높다"는 '재고팔두'(才高八斗)의 주인공
![[강현철의 중국萬窓] `글 솜씨` 하나로 목숨 건진 조조의 아들 조식](http://contents.dt.co.kr/images/202502/2025022802109969058001[1].jpg "[강현철의 중국萬窓] `글 솜씨` 하나로 목숨 건진 조조의 아들 조식")
[강현철의 중국萬窓] '글 솜씨' 하나로 목숨 건진 조조의 아들 조식
형제와의 골육상잔 비극 노래한 '칠보시'(七步詩)
이뤄지기 어려운 신과의 사랑 다룬 '낙신부'(洛神賦) 남겨
"재주가 여덟말에 이를 정도로 높다"는 '재고팔두'(才高八斗)의 주인공
삼국지의 간웅(奸雄)으로 꼽히는 조조(曹操)는 시문(詩文)에도 조예가 깊었다. 서기 208년 오(吳)나라의 손권(孫權), 촉(蜀)나라 유비(劉備)의 연합군과 적벽(赤壁)에서 전투를 벌일 무렵 달빛이 밝은 양자강에서 새들이 울며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뱃전에 서서 지어 부른 '단가행'(短歌行)은 비분강개하면서도 장중한 어조로 인재를 구해 천하를 통일하고자 하는 웅심(雄心)을 드러내고 있다.
조조의 장남 조앙(曹昻)은 전쟁으로 일찍 죽었고, 조조를 이어 위나라 황제 위문제(魏文帝)가 된 아들은 조비(曹丕)이다. 조식(曹植)은 3남으로, 조비의 친동생이다. 조비와 조식은 조조를 닮아 문재(文才)가 있었다. 그런데 형제들 사이는 우애는 커녕 원수에 가까왔다.
◇조식의 목숨을 건진 시
영명했던 조식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한몸에 받아 태자가 될 뻔 했다. 하지만 술을 즐기고, 개성이 너무 강한데다 조비의 견제로 결국 조조의 환심을 잃게 된다. 형 조비는 늘 조식을 괴롭혔다. 막 위왕의 자리에 오른 조비는 어느 날 갑자기 조식을 불러 일곱 발걸음을 옮길 동안 시를 한 수 지으라며, 지어내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했다. 시를 못짓는 것을 핑계로 조식을 핍박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식은 '칠보시'(七步詩·일곱 발자국)이란 제목의 훌륭한 시를 지었다.
七步詩(칠보시)
煮豆持作羹 (자두지작갱·콩을 쪄 마실 국을 만들고)
록菽以爲汁 (녹시이위즙·콩을 삶아 먹을 즙 만드는데)
기在釜下燃 (기재부하연·콩깍지는 솥 아래서 불타고)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콩은 솥 안에서 울고 있구나)
本自同根生 (본자동근생·본디 한 뿌리에서 났거늘)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왜 이리 급히 삶아대는고)
형제 간의 증오와 골육상잔을 슬퍼하는 내용이다. 남북조시대 일화나 야사 등을 모아놓은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실려 있다.
우리에게 유명한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실린 시는 조금 다르다.
煮豆燃豆기 (자두연두기· 콩대를 태워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솥속의 콩이 울고 있도다)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본디 한 뿌리에서 났거늘)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왜 이리 급히 삶아대는고)
콩을 삶는 '자두시'(煮豆詩)라고도 부른다.
사실 조식은 아버지 조조와 함께 군대에서 자라서인지 이전까지만 해도 시가 호쾌했다. 강호를 유람하며 사는 협객의 이야기를 담은 백마편'(白馬篇)에는 나라가 어려울때 나아가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치려는 기개가 잘 드러나 있다. '백마편'은 '白馬飾金羈 (백마식금기·백마는 금굴레 장식하고), 連翩西北馳(연편서북치·쉬지 않고 서북으로 치닫는다)'로 시작한다.
하지만 조비의 핍박으로 말미암아 다채롭고 격정적이며 진취적이었던 그의 시는 침울하고 어둡게 변해갔다. 어느 해 조식은 형제인 임성왕(任城王) 조창(曹彰) 및 백마왕(白馬王) 조표(曹彪)와 함께 수도인 남양에 황제 조비를 알현하려 갔다. 형제들을 만난 조비는 바둑을 둔다는 핑계로 조창을 불러내 독이 든 대추를 먹여 살해했다. 남은 조식과 조표는 죽음을 피해 자신의 봉지(封地)로 향한다. 조비는 두 사람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각기 다른 길을 이용해 가도록 명령했다. 이 때 지은 시가 '증백마왕표'(贈白馬王彪·백마왕 표에 주다)다.
시가 예술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조식은 특히 5언시(五言詩)에 대한 공헌이 컸다. 예를 들어 "높은 나무에 슬픈 바람 불어오고, 바닷물에는 파도가 출렁이네"(高樹多悲風 海水揚其波·고수다비풍 해수양기파), "가을 난초는 긴 둑을 뒤덮고, 붉은 꽃은 푸른 연못을 압도하네. 숨었던 고기가 맑은 파도에 튀어 오르고, 정겨운 새는 높은 가지에서 우네"(秋蘭被長坂 朱華冒綠池 潛魚躍淸波 好鳥鳴高枝·추란피장판 주화모록지 잠어약청파 호조명고지)는 싯구는 내용과 언어면에서 이전 오언시를 뛰어넘는다. 종영은 '시품'(詩品)에서 그의 오언시를 "오언시의 으뜸"이라고 칭송했다.
◇산문에도 일가견
10살 때 이미 11만자의 문장들을 외우고 있었고, 위(魏)가 천하를 사실상 통일한 후 '건안(建安) 문학'을 일으켰으며, 오언시를 완성시켜 훗날 당(唐)나라 이백(李白) 및 두보(杜甫)에게 큰 영향을 미친 조식은 산문에도 뛰어났다. '낙신부'(洛神賦·낙천의 신)가 유명하다. 222년 조비의 부름을 받아 조정에 들어갔다가 다시 자신의 봉안지로 돌아가는 도중에 낙천(洛川)를 지나가면서 낙수의 여신(낙신·洛神)을 생각하고 지었다 한다. '낙신부'는 건안 시대 사부(辭賦)를 대표하는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초나라 굴원의 '구가·상군'(九歌·湘君)에 필적할 정도다. '낙신부'는 낙천의 신이라는 밀비(密妃)를 만나는 상상을 그렸다. 인간과 신이 만나 서로 사랑을 나누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쓸쓸함이 배어 있다. '부'(賦)는 운문(韻文)과 산문(散文)의 중간 형태다.
유명한 화가인 동진의 고개지나 청의 소신은 '낙신부'를 바탕으로 '낙신부도' (洛神賦圖), '낙신도' (洛神圖)를 남겼다.
위진남북조 시대 조식의 시문은 대단한 존경을 받았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산수(山水)시인으로 꼽히는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사령운(謝靈運)은 "천하의 재주가 모두 한 섬이라면, 자건이 혼자 여덟말을 차지하리라"(天下才共一石 子建獨占八斗·천하재공일석 자건독점팔두)라고 했다. 자건은 조식의 자(字)이다. 사람의 재주를 칭찬할때 쓰이는 "재주가 여덟말에 이를 정도로 높다"(才高八斗·재고팔두)라는 성어는 여기서 나왔다.
조식은 '요작부'(요雀賦), '변도론'(辯道論) 같은 부(賦)도 남겼다. 강현철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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