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저서로 "국회 방해 의도의 기습계엄, 왜 평일인지…'비합리적 이유' 있었나"
정치권 안팎 '명태균 기소 당일 계엄' 의구심…11월말 여론조사TF 띄웠던 韓
韓 "TF 만드니 명태균 관련된 분들 자극한 듯"…尹탄핵후 '친윤 린치' 의총 회고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가 저서 '국민이 먼저입니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시점'에 관해 "뭔가 비합리적인 이유의 택일(擇日)"로 의문을 표출한 배경이 주목받고 있다. 강성 친윤(親윤석열)계의 '계엄 옹호' 입장과, 비선권력의 공천·여론조사 개입 의혹이 골자인 '명태균 게이트' 간 연관성을 의심한 대목이 저서에 담겼다.
지난 2024년 12월1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국민의힘 비공개 의원총회에 참석한 한동훈 당대표가 취재진을 만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윤 대통령은 당초 12월7일 1차 탄핵안 표결을 앞둔 담화에서 '질서있는 조기 퇴진 수용' 입장을 밝혔지만, 닷새 뒤(12월12일)"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저는 이에 당당히 맞서겠다"며 번복했고 이틀 만에 탄핵소추됐다.<국민의힘 홈페이지 사진>
2일 해당 저서에 따르면 한동훈 전 대표는 회고록 파트에서 지난해 12월3일 밤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가 있는 여의도로 향하던 당시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화요일인 12월3일에 비상계엄을 해야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뭔가 비합리적인 이유의 택일이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라고 떠올렸다. 그는 '경고성 계엄'에 불과했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을 저서 전반에서 배격하는 전제로 이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한 전 대표는 "금요일 밤이나 휴일에 계엄을 선포했다면 국회의원 151명 이상이 (지역구로 흩어져) 바로 국회에 모이기는 훨씬 어려웠을 것"임에도 "왜 계엄의 D-데이를 평일 밤으로 택했을까", "의원들이 모이기 어려운 밤 10시 넘어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을 보면, 계엄을 실행한 측에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막겠다'는 의도가 충분히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왜 평일을 골랐을까"라고 자문했다.
'비합리적인 이유의 택일'까지 거론했지만 직접 자답하진 않았다. 친한(親한동훈)계의 김종혁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은 지난달 2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비합리적인 이유가 뭘까. (한 전 대표에게서) 들으신 게 있나'라는 진행자 질문을 받고 "들은 거 없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논리적·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포고령 자체도 어처구니없었듯이 날짜의 택일 자체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과 언론 일각에선 지난해 12월3일 명태균씨가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점, 그 전날(12월2일) 명씨가 윤 대통령·김건희 여사 등과 연락에 써 온 '황금폰' 공개 의사를 밝혔단 점 등에 의혹을 제기해왔다.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명태균 게이트에 관해선 "(검찰이) 두달 동안 뭐했나. 비상계엄 이후 관심 밖이었다가 잦아드니까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전 대표는 명태균 게이트와 관련, 저서 내 윤석만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과 인터뷰 파트에서 "치열한 선거일수록 명씨처럼 불안감을 조성해 비즈니스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지난해 당대표 경선 국면에서도 여론조사로 도움을 주겠다는 인사가 접근했지만 거부했다고 회고했다. 또 "명씨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가 지시해서 당에 '여론조사 개선 TF'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TF는 지난해 11월말 발족했다.
그는 "명태균 사건을 당 차원에서 조사하고 여론조사로 민의가 왜곡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브로커 한명에 흔들리는 정당이면 안 되니까"라며 "그런데 TF를 만든 이후 '명씨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많은 분들'을 자극한 것같다"고 추정했다. "명씨 사건으로 TF를 만든 이후 '김옥균 프로젝트'니 뭐니 하는 것들이 더욱 강하게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꼭 한동훈을 찍어내야 한다' 이런 분위기를 느꼈다"면서다.
특히 "'계엄 자체를 옹호하는 사람'과 '명태균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교집합'이 큰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며 "이런 구태정치는 그냥 두면 안 된다"고 밝혔다.'계엄 자체를 옹호하는 사람'은 한 전 대표가 지난해 12월14일 오후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를 돌아본 대목과 연결성이 깊다. 윤 대통령에 대한 두번째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직후 친윤계의 지도부 축출 요구가 최고조에 이른 상황이었다.
지난 2024년 10월31일 오전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 강당에서 여의도연구원이 주최한 '여론조사 정상화를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여론조사, 이대로 괜찮은가'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국민의힘 홈페이지 사진>
한 전 대표는 회고록 파트에서 "여러 의원들이 '그 정도로 적대적인 분위기의 의총은 처음 겪어봤다'고 했다"며 "탄핵 사유인 비상계엄조차 '그동안 대통령에 맞춰주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 나더러 책임지라는 식이었다. 내가 서 있는 연단을 향해 달려들듯 뛰어나오는 의원도 있었다. '돌아이'라는 둥, '저런 놈을 데려다가 법무부 장관을 시킨 윤석열은 제눈 지가 찌른 거야'라고 하는 둥"이라고 밝혔다. "물병을 바닥에 던지는 의원"도 거론했다.
특히 "A의원은 '한동훈 당대표를 끌어내리는 데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다. B의원은 '한동훈 대표가 대표직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부적절하다. 이 자리에서 그만둬야 한다. 이 생각을 아주 오래 전부터 해왔다. 탄핵이 누구 때문인가'라고 소리쳤다. 내가 당대표직을 수행하면서 대통령이 하라는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탄핵에 이른 것이고, 오래 전부터 대표직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는 이야기였다"고 소개했다.
이어 "몇몇 의원들이 웅성이며 동조했다. 나는 최대한 말을 아끼다가 나지막하게 '비상계엄을 제가 한 게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불법계엄을 비판하진 못할지언정, 마치 옹호하듯 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었다"고 부연했다.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A의원은 12월14일 한겨레신문이 조은희 의원으로, 비상계엄에 함구하고 '탄핵이 누구 때문인가'라고 주장한 B의원은 시사IN에서 12월18일 김민전 당시 최고위원으로 보도했다.
한편 한 전 대표는 친윤계와 더불어민주당 친명(親이재명)계를 아울러 "적어도 나를 공격한다는 측면에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고 회고록에서 지적했다. 윤 대통령의 '질서있는 퇴진 약속'을 전제로 1차 탄핵안을 투표불성립시킨 다음날(지난해 12월8일) 자신과 한덕수 국무총리가 당사에서 당정협의 강화 공동담화문을 발표한 취지를 "최대한 빨리 총리 중심의 국정운영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라고 해명하면서다.
한 전 대표는 "대국민 약속(12월7일 담화)과 달리 2선 후퇴하지 않고 대통령 직무를 계속 수행하려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며 "국무회의가 실제로 소집되기 전 총리와의 공동담화를 더 서둘렀다"고 밝혔다. 또 "국회에서 '계엄을 막지 못한 총리를 국회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란 얘기가 있었다. 이에 따라 장소를 당사로 바꿨다"며 "이것이 민주당과 당내 '친윤 그룹'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받게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발언 순서가 총리보다 당대표가 먼저여서 문제였다'느니, '장소가 당사여서 문제였다'느니, '내가 이 상황을 이용해 권력을 잡으려 한다'는 비난까지 나왔다"며 "당정협의에선 언제나 당측이 정부측보다 먼저 발언해왔으니 그렇게 했고, '내가 권력을 잡으려 한다'는 얘기는 얼토당토않았다"면서 "야당과 친윤 그룹에선 내가 '대통령 놀이'를 하고 있다, '건방지다, 네가 대통령이냐'는 식의 프레임으로 집요하게 공격했다"고 했다.
그는 "양측이 똑같은 주장을 하는 건 참 드문 경우였지만 적어도 나를 공격한다는 측면에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민주당은 한발 더 나아가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고, 총리가 국정을 책임지고 수행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제2의 내란'이라는 표현까지 썼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국면 당시 '거국중립내각 총리에게 전권을 맡기라'고 요구한 주체가 민주당이었다고 상기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