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때마다 언급되는 헌법개정(개헌)은 오랫동안 논의된 과제이지만, 현실에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끓어올랐던 개헌논의도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면서 잠잠해지는 모습이다. △개헌 시기 △필요 의석수 200석과 국민투표 등 높은 요구조건 △권력구조 개편 모델 및 헌법 전문 △현재 권력의 국정운영동력 필요 △미래권력의 임기단축 거부 등 크게 5가지 이유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가장 최근 개헌 논의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6일 제안하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가 반대하면서 사실상 논의가 가로막혔고, 결국 사흘만에 철회됐다. 우 의장은 자신의 제안을 철회하는 과정에서 "현 상황에서는 대선 동시투표 개헌이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판단한다"고 언급했다. '개헌 시점'을 맞추는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간 상당수의 개헌 논의에서는 국회의원 선거·지방선거 등과 함께 '동시선거'를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헌법 124조부터 126조는 헌법개정안이 국민투표로 확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전 국민이 투표해야 하는 큰일인 만큼 기존 투표일과 함께 동시에 치르는 것이 덜 번거롭고 예산도 절약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국민투표에 이르기 위해서는 대통령 혹은 국회가 법안을 발의하고 200명 이상의 의원이 찬성해야한다. 200석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을 무력화 할 수 있는 의석수인만큼,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국회 내 규모가 있는 정당이 개헌에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개헌 시점을 맞추고 국민 투표에 이를 수 있는 찬성 의석수를 보유했더라도 난관은 또 있다. 국민투표를 통과하기 위해 적절한 권력구조 개편의 모델을 제안해 합의를 끌어내야한다. 4년중임제, 의원내각제 등이 거론된다.
또한 개정된 헌법전문에 어떤 것을 수록하고, 구체적인 헌법 조항 중 어떤 곳을 수정할지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 예를들어 민주당은 헌법 전문에 5.18 민주화 운동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국민의힘의 경우 최근 비교적 구체적인 제안을 내놨다. 주호영 국민의힘 개헌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0일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의 중립성, 독립성 확보를 위해 추천위원회를 법정 기구화하고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하거나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폐지하고, 국민입법제와 국회의원 소환제 도입 등의 내용을 담은 5대 개헌 방향도 발표했다.
그와 별개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 그 어느쪽의 이해관계에도 개헌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는 것도 개헌 논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정권 초에 개헌을 추진할 경우에는 국정운영 동력이 상실될 수 있어서 논의가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고, 정권 후반에는 떠오르는 유력주자가 권력을 분산하는 것을 원치 않아 논의가 좀처럼 진행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여기에 개헌이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바꾸는 경우 더더욱 이해관계가 첨예해져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근 논의된 개헌 문제 역시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이 차기 대통령 임기를 단축해 2028년 4월 총선과 대선을 같이 치르자는 입장이지만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내란 종식이 우선"이라는 취지로 사실상 개헌에 반대했다.
때문에 87 체제를 바꿀 개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 같은 '보스형 리더십'이 결단하지 않으면 나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도돌이표'가 되기 쉽다는 말도 나온다.
법조계 한 인사는 디지털타임스와 통화에서 "현재 여야가 개헌을 하고자 했을 때 합의할 수 있는 안이 있다면 '이중배상금지'(군인, 군무원이나 경찰 공무원이 직무 중 죽거나 다쳐도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고 법정 보상금만 받는 제도) 정도일 것이고, 여야가 통 크게 합의한다고 해도 5.18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정도가 아니겠느냐"라며 "지지층에게 양보를 설득하는 정치는 점점 실종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임재섭기자 yjs@dt.co.kr
지난 6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기자회견을 하기 앞서 안경을 고쳐쓰는 모습. 그는 이날 담화를 한지 3일만인 9일 자신의 제안을 철회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