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정부가 전임 바이든 정부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통제 정책을 철회한다는 소식에 엔비디아 등 반도체 관련 종목들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했지만, 국내 반도체 종목들의 주가는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일과 같은 가격에 장을 마쳤고, SK하이닉스 주가는 0.26% 하락한 19만300원으로 마감했다. 두 종목 모두 장 초반 상승세를 탔다. 앞서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바이든 정부의 AI 규칙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관료적이며 미국의 혁신을 방해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반도체 수출통제 폐기 가능성이 높아진 기대감이 반영됐다.
먼저 장을 마친 뉴욕 증시에서 반도체 대장주 엔비디아가 전날보다 3.1% 오른 117.06달러에 거래를 마쳤고, 브로드컴과 TSMC 주가도 각각 2.36%, 1.31% 올랐다. 반도체 관련 종목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도 장 막판 반등하며 1.76% 상승하자 국내 투자자들도 반도체 종목을 사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언급한 바이든 정부의 AI 규칙은 'AI 확산 프레임워크'(Framework for Artificial Intelligence Diffusion)'라는 이름의 AI 반도체 수출통제 시스템이다. 전 세계 국가를 동맹과 파트너 국가, 일반국가, 우려국가로 등급을 나눠 차별적으로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동맹국에는 수출 제한이 없지만 일반 국가 범주에 속할 경우 수출 상한선이 설정되고,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 우려 국가에는 수출이 통제된다. 트럼프 정부는 이 정책을 폐기하는 대신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는 새 규칙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미 정부의 조치로 저가형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존 규칙으로 인해 수출이 불가능했던 지역에 AI칩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 수요가 발생하면 국내 반도체 기업들 역시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다.
이 같은 기대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관련 종목들의 주가가 장 초반 급등했지만, 장중 상승폭을 모두 반납했다. 한미반도체와 디아이, 리노공업, 이노테크닉스 등 다른 반도체주 역시 1% 안팎의 상승률에 그쳤다.
시장에서는 수출규제 폐기가 아닌 새로운 통제방식의 등장이 될 수 있고, 그간 트럼프 정부의 변동성을 고려하면 섣불리 호재와 악재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결국 미국 행정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명확한 정책 방향이 나오기 전까지 국내 반도체 종목의 관망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