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경제성장을 견인할 핵심 전략으로 신산업에 대한 정부 주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반도체, 인공지능, 배터리, 바이오 등 전략기술에 연구개발(R&D) 투자와 세제 지원을 강화하고 관련 인재를 육성해야 합니다."(30대 직장인)
대한상공회의소가 21대 대선을 앞두고 소통플랫폼을 통해 지난달 15일부터 30일까지 15일간 국민들에게 '대선후보에게 바라는 나만의 정책' 설문에서 나온 의견 중 하나입니다. 8184명의 국민이 참여해 총 2만4490건의 의견을 제시했고 배터리 산업을 포함한 신산업 분야의 지원 필요성이 두드러졌습니다.
배터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제안된 정책은 '첨단전략산업 직접환급(Direct Pay)' 제도입니다. 이는 국가전략기술 사업화 시설 투자세액공제액 중 납부할 세금이 없어 공제받지 못한 금액을 현금으로 직접 환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입니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은 국가전략기술에 투자할 경우 당해 연도 법인세에서 세액공제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초기 대규모 투자 비용과 R&D 비용이 드는 배터리 산업에서는 실질 혜택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이는 기업이 단기간 내 영업이익을 내기 힘든 구조에서 이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법인세가 없어 세액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첨단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는 초기 투자 자금을 신속히 확보할 수 있도록 세액 공제를 통한 법인세 감면 대신 직접환급 방식을 통해 세액 공제 금액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특히 세액공제 이월 기간을 현재 최대 10년에서 20년으로 연장하는 조세특례제한법 144조를 개정하는 방안도 제시됐습니다. 이차전지 등 국가전략 기술은 상업화 시점까지 10년 이상 소요되는 점과 백년대계 산업 발전을 위한 투자 독려를 위해서입니다.
또 기업들이 세액 공제 혜택을 다른 기업 등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는 '제3자 양도 제도'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담겼습니다. 미국에서 이미 시행 중인 제도로 기업이 직접 세액 공제 혜택을 활용하지 못할 경우 이를 다른 기업에 판매해 투자 재원 확보의 유연성을 확보하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첨단전략산업 국내생산촉진세제' 도입의 필요성도 강조됐습니다. 미국, 일본 등 글로벌 경쟁국들은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생산 세액공제 제도를 도입해 자국 기업을 지원 중이지만 한국은 지원 부재로 경쟁력 제고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 IRA(인플레이션감축법) AMPC(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 제도를 통해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 핵심 광물 생산기업의 생산량에 기반한 세액공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배터리 셀은 1kWh당 35달러이며 모듈은 1kWh당 10달러 입니다. 납세자가 세액공제 금액만큼 직접 환급받거나 다른 납세자에게 양도도 가능합니다.
일본은 전략분야 국내생산 촉진세제를 시행 중입니다. 전기차, 이차전지, 반도체, 지속가능항공유, 화학, 그린스틸 등 5개 분야에 대해 일본 내 생산량에 비례해 반도체는 법인세의 20%, 나머지 4개 분야는 40%까지 공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첨단산업 기업들의 기술력은 높은 수준이지만 경쟁국 대비 정부 지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가격 등 경쟁에서 뒤쳐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국내 기업들이 높은 비용 부담으로 투자를 지연하거나, 해외 진출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경우 이는 자본과 일자리 유출로 이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국가전략산업과 신성장, 원천기술 산업에 한해서는 토지와 건물 투자도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해달라는 요구도 포함됐습니다. 통합투자세액공제 대상 자산은 기계장치 등에 한정되며, 토지와 건축물, 항공기, 선박 등은 공제 대상에서 제외돼 있습니다.
하지만 배터리 등 첨단산업의 총 시설투자 중 토지와 건물 투자 비중은 30~50%에 달합니다. 시설 투자에서 정작 비중이 큰 자산인 토지와 건물 등이 공제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투자를 촉진한다는 제도 취지와 실효성을 저해한다는 지적입니다.
산업 생태계를 위해서는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상 사용후 배터리에서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된 리튬, 니켈 등 금속 회수기술뿐 아니라, 광물 회수 대상이 되는 모든 고형 폐기물 기반의 재자원화 기술로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는 핵심 광물 대중국 수입의존도가 높아 중국 수출통제의 영향을 받고 있는 만큼 세액공제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정책 제언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5단체가 차기정부가 꼭 추진해야 할 100대 정책과제를 모아 '미래성장을 위한 국민과 기업의 제안'으로 전달한 것입니다. 대선후보들에게 전달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경제 단체들이 한 목소리로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차기 정부의 정책 결정에 지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배터리업계에서 꼭 필요한 부분들이 담긴 것 같다"며 "차기 정부가 이번 제언을 수용해 첨단산업 육성과 국가전략기술 지원을 강화할 경우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미래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박한나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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