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영국과 무역협상을 맺은 데 이어 중국에 대한 관세율도 기존 최대 145%에서 30%로 낮추기로 해 한국 기업들도 새로운 영향권에 놓였다. 중간재 수출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지만, 중국에 대한 고관세로 반사이익이 예상됐던 TV·가전, 자동차 등의 업종의 유·불리가 달라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12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4~5월 미 서부 주요 항만들은 중국산 수입 감소로 물동량이 급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스앤젤레스항의 이달 첫주 물동량은 작년 동기보다 3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달 입항 예정이던 선박 중 25%가량이 물량 부족으로 취소됐다. 이는 주요 컨테이너 선사들이 중국-미국 항로 운항을 중단한 여파로 풀이된다. 롱비치항의 지난달 마지막주 입항 선박 수는 전부보다 38% 줄었다.
하지만 10~11일(현지시간)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해 최대 145% 관세를 30%로, 중국은 대미관세 125%를 10%로 각각 낮추기로 하면서 글로벌 통상 환경도 변화가 감지된다.
우선 한국의 수출 시장에서는 이번 양국간 관세 인하가 이득이 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다만 반사이익 업종으로 여겨졌던 자동차와 가전·TV 등의 분야는 셈법이 복잡해질 수 있다. 북미 시장서 한·중 경쟁이 심화되는 TV 시장의 경우 프리미엄 제품군을 넘어 중저가 시장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는데, 이번 관세 완화가 이를 희석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지난달 말 보고서에서 "관세로 아시아에서 수입되는 소형 TV의 구매력이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한국 브랜드들은 이 부문으로 확장할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며 "소형 TV는 수익성이 낮지만 삼성과 LG는 타이젠과 웹OS와 같은 자사 플랫폼을 활용해 추가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업종의 경우 미국의 영국과 관세 협상을 맺은 데 이어 중국과도 구체적인 성과를 내면서, 유럽연합(EU)·일본 등 주요국과의 협상 가능성이 높아졌다. 영국의 경우 대미 수출에 대해서는 10% 보편관세를 유지하면서도 영국산 자동차에 대해 연간 10만대까지는 기존(27.5%)보다 낮은 10%의 관세율만 부과하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내달 3일 대선을 치루는 한국 입장에서는 협상력이 관건으로 꼽힌다. 현대차는 우선 다음달 2일까지 미 현지 가격을 동결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이후 관세 정책에 변화가 없으면 가격 인상이 가능하다는 의미여서 발빠른 협상력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수입차 중복 관세는 제외했지만 이달부터는 자동차 부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한다. 여기에 수출에 상대적으로 플러스 요인이었던 고환율도 최근 들어서는 1400원 안팎으로 낮아져 환차손익 부담도 커진 상태다. 다만 올해 높은 기초 환율로 판매보증충당금 효과가 없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은 위안 요소로 꼽힌다. 현대차는 작년 급작스런 고환율로 3200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입었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부품 관세 부과로 현대차·기아의 미국 생산 원가는 1000~2000달러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며 "작년과 유사한 수준의 대미 수출이 유지될 경우 양사의 총 연간 관세 부담은 각각 5조9000억원, 4조5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부품 관세가 유지되고 수입차 관세가 10%로 낮아질 경우 현대차·기아의 부담액은 각각 2조4000억원, 1조8000억원으로 추산된다"며 "환율의 경우 연평균 4%의 환율 상승을 가정하면 10% 관세 부담은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