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첫 무역협상에서 괄목할 만한 합의에 이르렀다. 미국과 중국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10일·11일(이하 현지시간) 양일간 무역협상을 벌였고 그 결과를 12일 오전 공동성명으로 발표했다.
주요 합의 내용을 보면, 미국은 중국에 대해 현 145%의 관세율을 30%로 인하한다. 중국은 현 125%를 10%로 낮추기로 했다. 양국이 똑같이 115%포인트씩 관세율을 인하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더해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90일간 관세를 유예키로 했다. 이밖에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공세에 대한 보복으로 시행한 희토류 수출 금지 해제에서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좀비 마약으로 악명높은 펜타닐 원료의 대미 수출 통제에 중국이 적극 나서기로 한 것도 성과다.
공동성명에서 밝힌 관세율 인하는 당초 예상됐던 수준을 뛰어넘는다. 사실 미국의 대중 145%, 중국의 대미 125% 관세율은 무역을 하지말자는 것과 다름없는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협상에 앞서 9일 대중 관세를 80%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협상에 앞서 중국에 대해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상적 무역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더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30%로 대폭 낮춘 것은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을 재개하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양국이 예상외로 큰 폭의 관세율 인하 합의에 이른 것은 '살인적인' 관세율로 모두 내상(內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수출항에서는 초고율 관세로 인해 미국으로 향하기로 했던 상품들이 항구에 쌓이고 있다.
공장에서는 근무 단축에 들어가고 일부에선 근로자 해고가 일어나고 있다. 관세전쟁이 계속되면 그러잖아도 높아지고 있는 중국의 실업률이 급등할 것이다.
이런 사정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특히 소규모 수입업체들이 관세 충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중국에서 소재나 부품 등을 수입해 가공하는 기업들은 높아진 구입비용으로 인해 역마진을 호소한다.
WSJ에 따르면 뉴햄프셔주에 위치한 소기업 파이브스타노스는 올해 초까지 12명이었던 직원을 최근 5명으로 줄였다. 이 기업은 사인펜부터 야외 조명용품까지 다양한 소비자 제품을 중국 제조업체들과 협력해 생산해왔다. 그러나 중국에서 수입이 안 되면서 가동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콜로라도주에 위치한 스카이뷰텐트는 텐트 생산량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텐트 제작 직원 5명 중 1명을 최근 해고했다. 중국산 직물로 텐트를 생산하는 이 회사는 자재 주문을 보류하고 신규 투자자 확보에 나섰다.
WSJ는 소기업들은 대체로 마진율이 낮고 보유 현금이 부족한 데다 생산지를 옮기는 게 쉽지 않다 보니 무역전쟁의 충격에 훨씬 취약하다고 보도했다.
미국상공회의소는 소규모 수입업체에 적용되는 관세를 면제해달라고 트럼프 행정부에 이달 초 요청한 바 있다. 미 상의는 소기업들이 관세 인상을 견딜 자본 여력이 없다면서 "합의를 타결하는 데 수주나 수개월만 걸린다고 해도 많은 소기업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볼 것이라는 점을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다.
미중이 한발씩 물러나면서 무역전쟁의 예봉은 꺾였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우선 대중 관세율 30%는 여전히 높다. 중국은 언제든지 희토류 수출을 통제할 카드를 갖고 있다. 완전한 신뢰의 바탕 위에 양국이 소기의 목적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특히 이번 협상은 관세와 희토류, 펜타닐 등에 한정한 것이었다. 미중 양국 간에는 관세 외에도 기술 탈취, 저작권보호, 금융시장개방 등의 이슈가 남아있고 특히 대만문제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이규화기자 david@dt.co.kr
허리펑 중국 부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왼쪽)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 제네바 AP=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