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에서 연간 35만톤 규모의 폴리염화비닐(PVC) 공장이 올해부터 가동된다. 막강한 석유자원과 자본을 가진 중동이 석유화학 사업까지 공격적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모양새다.
중국발 공급과잉이 심상찮은 상황에서 중동의 공세까지 이어지면서 수출액 기준으로 반도체와 자동차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한국 석유화학 산업은 갈 곳을 잃고 있다. 작년 10월 말 기준으로 중국의 에틸렌 자급률은 95.6%에 이른다.
13일 석화업계에 따르면 인더스트리 카타르는 메사이드 지역에 연간 35만톤 규모의 PVC공장을 올해 중반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인더스트리 카타르는 현지 국영기업이자 세계 5위 가스 회사인 카타르에너지가 51%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다.
이 공장은 카타르 현지 최초의 PVC 생산공장으로 투자 금액만 2억7900만달러(약 3967억원)에 이른다. 이 회사는 막대한 원유 정제능력을 바탕으로 PVC의 주원료인 염화비닐단량체(VCM)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만큼 강력한 가격 경쟁력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PVC는 각종 배관용 파이프와 건축 자재, 자동차 부품 등 다양한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플라스틱 원료로 이미 중국의 공격적인 증설로 가격 경쟁이 치열한 제품이다. 중동까지 이 시장에 진출할 경우 한국의 입지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난 2022년 톤당 137만4000원이었던 국제 PVC 평균 가격은 2023년 105만9000원, 지난해 105만2000원으로 떨어졌다. 중국과 중동이 원가 우위의 저가 공세를 본격적으로 펼치면 PVC 가격이 톤당 100만원 이하로 하락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는 중국화공그룹, 신장중타이화학 등이 공급 중이며, 중동에서도 사빅, 이집트석유화학회사, 사솔, 웨스트레이크케미컬, 산마그룹 등이 생산 중이다.
한국에서는 LG화학과 한화솔루션 등이 해당 시장에 진출해 있다.
원료와 자금력을 앞세운 중동의 석유화학 공세는 한국 땅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내년 준공 예정인 에쓰오일의 울산 샤힌 프로젝트로, 기존 원유공정에서 바로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COTC' 첨단 공정기술이 들어가 있다.
석화업계에서는 에쓰오일의 최대주주가 사우디아라비아 최대 국영기업 아람코인 만큼 이 프로젝트가 한국에서 성공하면 중동에 관련 생산라인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원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1990년대부터 석유화학 산업을 육성하고 있으며 그 범위는 기초소재에서 스페셜티까지 확대하고 있다.
진실 한국무역협회 신무역전략실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 석유화학 기업들은 빠르게 저탄소 기술과 탄소포집저장, 블루수소 등으로 전환 중"이라며 "정부가 저탄소 석유화학 로드맵을 수립하고 국내 기업들이 저탄소나 고부가가치 기술로 적극 전환할 수 있도록 투자 세액공제 같은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펀드 조성 등의 방식으로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모하메드 알 카타니 아람코 다운스트림 사장이 지난 12일 에쓰오일 울산공장에서 추진하는 샤힌 프로젝트현장을 방문, 안전 시공과 성공을 기원하며 설비에 서명하고 있다. [에쓰오일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