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을 순방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에 엔비디아의 AI칩(GPU) 대량 수출을 허용키로 하면서 한국의 상황과 대비돼 주목된다.
엔비디아 AI칩은 미국 정부가 엄격히 수출을 통제하고 있는 전략제품이다. 중국 북한 러시아 등 적성국에는 수출하지 못한다. UAE는 엔비디아 AI칩 'H100' 수입을 원하고 있으나 그동안 미국 정부의 규제로 수출 통제를 받아왔다. 그러던 미국이 UAE를 비롯한 증동국가에 대규모 AI칩 수출을 허용키로 한 것은 오일머니의 미국투자에 대한 당근으로 AI칩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UAE 3국 순방에 즈음해 3국은 미국에 총 3조달러에 달하는 투자 및 선물을 안겼다. 이에 부응해 트럼프 대통령은 순방 직전 국가별 등급을 매긴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를 폐지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 UAE에 2027년까지 매년 AI칩 50만개 이상을 수출하도록 허용해 UAE는 총 100만개 이상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UAE가 확보하게 될 칩 중 20%는 UAE 최대 AI기업 G42에, 나머지 80%는 UAE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미국 기업에 배정된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는 엔비디아 젠슨 황 CEO도 동행했다.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는 네이버를 중심으로 우리나라도 현재 1만여개 수준을 확보했을 뿐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지난 2월 '제3차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열고 '글로벌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해 내년 상반기까지 AI 고성능 GPU 1만8000개를 확보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AI에는 초고성능 AI컴퓨팅센터가 필수이고 여기에 AI가속칩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동맹국까지 포함해 철저한 심사를 거쳐 수출하도록 통제하고 있어 계획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또 AI가속칩을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공급능력이 수요에 비해 크게 못 미치는 사정도 작용하고 있다. 이점을 감안하면 이번 UAE가 확보한 물량이 얼마나 파격적인지 알 수 있다. UAE가 그에 상응한 대가를 미국에 지불했음은 물론이다. 지난 3월 UAE는 미국에 10년간 1조4000억달러(약 20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서 세 번째로 찾는 UAE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투자 약속을 다시 확약받을 것으로 보인다.
UAE는 2031년까지 AI 강국이 되겠다는 '국가 전략 AI 강국 2031' 비전을 추진하며 미국과 기술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UAE는 트럼프 대통령 중동 순방 전부터 엔비디아 AI칩 추가확보를 위한 논의를 진행해왔다. 백악관 AI·가상화폐를 총괄하는 데이비드 색스 담당관이 트럼프의 중동 방문에 앞서 며칠간 UAE를 방문해 협상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아라비아도 AI칩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번에 사우디도 1만8000개 이상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UAE 못지않게 AI경쟁력 확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 젠슨 황을 비롯해 샘 올트먼 오픈AI CEO, IBM의 아르빈드 크리슈나 CEO 등이 동행한 것도 빈 살만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는 말도 있다.
중동 국가들이 AI에 매달리는 것은 '석유경제'에서 탈피해 미래 경제를 좌우하게 될 AI경쟁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여기엔 중동 국가들의 풍부한 자금과 전력 인프라가 뒷받침되고 있다. 오일머니로 밀어붙이는 중동국가들의 AI칩 파상공세는 한국의 AI전략에 심대한 변수가 아닐 수 없다.
14일 과기정통부는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첨단 GPU 확보 추진방안'을 확정·발표했다. 연내 GPU 1만장 확보를 목표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다. 미국 출장에 나선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이 오는 16일(현지시간) 엔비디아 측과 만나 심도 있는 협력을 논의할 예정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GPU를 들여오기 위해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협의해왔고 전반적인 수급 상황도 좋아졌다. 중동국가들의 이번 GPU 구매가 우리에게 크게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이라며 "첨단 GPU 확보 추진방안을 차질 없이 이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규화·팽동현 기자 david@dt.co.kr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있는 압둘아지즈 국제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사우디·미국 투자 포럼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우디는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첫 국빈 방문에서 미국과의 인공지능·방위산업 분야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약속했다. 리야드(사우디아라비아) UPI=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