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적 부채는 36조 달러에 이르며 한해 국채 이자비용만 2024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 기준 1조 달러가 넘었다. 이자비용이 전년 동기 대비 29% 증가한 1조1330억 달러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이자비용 비중이 3.93%에 달해 1998년 이후 가장 높았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 정부 들어와서도 공적 부채는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기축통화국으로서 돈을 찍어내어 이자를 갚는다 해도 지속가능성을 의심받지 않을 수 없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16일(현지시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등급 전망은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변경했다.
◇무디스 "예산적자 확대, 차입 가속화할 것"= 무디스는 등급변경 보고서에서 "정부 부채 비율과 이자지급 비율이 지난 10여년간 유사한 등급의 국가들보다 현저히 높은 수준으로 증가한 것을 반영했다"고 강등 사유를 설명했다. 무디스는 앞서 지난 2023년 11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하고 등급 하향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무디스는 예산 적자 확대로 미국 정부의 차입이 가속화할 것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금리 상승을 초래할 것이라고 보았다. 무디스는 의회에서 심의 중인 어떤 예산안도 정부 지출과 세수 간의 지속적인 격차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무디스는 3대 국제신용평가사 중 유일하게 미국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으로 유지해왔는데 이번 무디스의 조정으로 모두 2등급으로 강등됐다. 앞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2023년 8월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전격 하향한 바 있다. 그에 앞서 S&P는 2011년 미국 등급을 AAA에서 AA+로 하향했다.
신용등급이 하향됨에 따라 미국 정부는 재정 운영에서 국가채무를 줄이는 데 역점을 둘 것으로 보여 정부 예산 지출 감축 구조조정은 더 강화되고 통상정책에도 큰 파장이 예상된다. 관세 공세를 더 강화할 가능성도 높다.
◇백악관, "바이든 정부 때 늘어난 부채 때문"=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백악관 대변인 쿠시 데사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국가 부채를 증가시켰다고 비난하며,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 시점을 비판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은 바이든의 난국을 수습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무디스에 신뢰성이 있었다면 지난 4년간의 재정 재앙이 전개되는 동안 침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부채 증가는 전임 바이든 정부 때 발생했는데 왜 그때는 가만있다가 이제와 신용등급을 내리냐는 불평이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은 의회 내 공화당이 만료되는 감세 조치를 연장하고, 새로운 감세 조치를 추가하는 것은 물론, 메디케이드와 영양 지원 지출을 줄이고, 국경 단속과 국방력을 강화하는 대규모 세금 및 지출 법안을 마련하려는 와중에 이루어졌다. WSJ은 이 같은 감세 및 지출 계획이 예정대로 12월 31일에 확정되면 향후 10년간 예산 적자가 약 3조 달러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의회 예산 관련 의원들은 등급 하향 조정에 대한 즉각적인 성명을 냈다. 하원 예산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브렌던 보일(펜실베이니아주, 민주당) 하원의원은 "이번 등급 하향은 직접적인 경고다. 우리의 재정 전망이 악화되고 있으며, 하원 공화당 의원들은 상황을 악화시키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위원장인 프렌치 힐(공화당, 아칸소) 하원의원은 이번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우리나라 재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고 지적하며 "재정 안정을 회복하고, 부채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며, 성장 친화적 경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데 전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공화당 내에서도 지출 삭감을 주장하는 의원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원 공화당 지출 강경파 의원들은 16일 지출 삭감을 가속화하고 청정에너지 세제 혜택 종료를 앞당기기 위해 해당 법안 폐지 절차를 밟고 있다.
◇투자자들 美 채 외면하면 이자부담 가중, 달러화 위협=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은 이미 부채 증가와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감으로 타격을 받고 있는 미국 국채 시장에 압박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채 금리는 더 오를 것이며 금리로 인한 재정 부담은 더 늘어날 것으로 쉽게 예상된다.
2011년 S&P의 신용등급 강등 직후에는 미국 국채가 반등했는데, 당시 글로벌 경기 침체 때문이었다. 이는 투자자들이 여전히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투자처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이 당장 시장 혼란을 촉발할 것이라고 보긴 힘들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며 다른 국가들의 벤치마크다. 무디스도 "미국이 경제 규모, 회복력, 역동성, 그리고 세계 기축 통화로서 미국 달러의 역할 등 탁월한 신용 강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투자자들은 이번 신용등급 강등이 최근 무역 전쟁으로 인해 미국이 입은 이런 예외적인 지위에 대한 타격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WSJ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 매수에 요구하는 프리미엄을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인 4.5% 이상으로 끌어올려 성장과 시장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프린시펄 애셋 매니지먼트의 글로벌 채권 부문 책임자인 마이클 구세이는 WSJ에 "신용등급 강등으로 인해 부채 상환 비용도 증가할 것이고 재정적자는 더욱 커질 수 있다"며 우려했다. 이규화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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