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만에 첫 파업에 돌입한 한국배터리산업협회·연구조합 노조의 투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승진 심사 무산과 성과급 지급 기준 등을 둘러싼 갈등이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협회 측은 법적 대응을 시사하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23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오전 8시 30분 서울 서초구 한국배터리산업협회와 한국배터리연구조합이 위치한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회관 앞에는 소속 직원들이 일제히 "부회장 부임 2년 승진 심사 제로!" 문구의 피켓을 손에 들었다. 이번 파업은 전체 근로자가 집단 연차를 사용하는 준법 투쟁 형식으로, 1997년 한국배터리연구조합으로 출범한 이후 27년 만에 최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비영리기관에서 노조 시위와 파업이 이뤄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협회는 배터리 기업들이 회원사로 가입해 활동하는 단체로 이익 창출이 주목적이 아니어서 성과 압박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배터리협회 노조 측은 상근 부회장의 2023년 부임 이후 약 2년 반 동안 단 한 1건의 승진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불가피한 사유가 없는 한 매년 말 정기정인 승진 심사라도 연 1회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경영 행태에 협회에는 약 2년 동안 총 18명의 임직원이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체 임직원 중 31.6%에 해당하는 근로자가 회사를 떠난 수치다. 특히 10명의 팀장 체제에서 4명이 퇴사하면서 중간 관리급 책임자들이 이탈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노조 측은 협회 경영진이 성과급 지급기준 변경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경영진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함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유독 성과급 지급기준에서만 상여금 제외를 주장하며 급여 체계의 단순화 시행 시기를 미루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설명이다.
권하리 한국배터리산업협회·연구조합 지부장은 이날 현장의 모두발언에서 "노조와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된 임금 인상률과 성과급의 통보, 심지어 임원에게만 유리하게 S등급은 300%, A등급은 200%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성과급 지급안까지 제시됐다"며 "연 1회 승진 심사의 취업 규칙 명문화와 이사회 총회 전 임금 협상이라는 우리의 요구는 상식적"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결국 참다가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고위 임원의 의전 차량을 BMW i7이라는 2억원 초반대 수입 전기차로 시도해 업계 반발로 위약금을 낸 사례 등이 지적된 것이다.
이에 대해 협회 측은 승진 관련사항은 인사와 경영권의 자율사항으로 단체 교섭의 대상이 아닌 데다 사용자가 교섭에 응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조정회의에서도 이를 이유로 조정이 결렬됐다는 설명이다.
협회 측은 "승진심사 관련 규정이 불미해 규정을 마련 후 승진을 시행한다고 부서장 회의에서 결정한 바가 있다"며 "규정 마련 과정에서 직원들이 일정 기간 근무자 자동 승진을 지속 요구해 제정이 늦어지게 된 것이지 상근 부회장의 고의 지연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답변했다.
이어 "현행 보수 규정상 성과급은 기본급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변경시 이사회 의결사항이지, 경영진 재량사항이 아니다"라며 "경영진은 노조측이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하기를 희망한다면 동의한다"고 말했다.
또 협회 측은 승진을 이유로 퇴사한 경우는 없다는 입장이다. 협회 측은 "젊은 직원이 다수로 팀장급 퇴사는 대기업 취업, 육아, 가업 승계 등의 사유로 전직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가족에게 자랑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했다.
BMW i7에 대해서는 "협회는 법인차량을 유사협회와 같은 수준인 G90을 사용해 왔는데 교체 시기 도래를 계기로 협회 특성을 감안해 수입차임에도 불구하고 회원사 배터리가 장착된 BMW 차량을 선정한 것"이라며 "비용도 담당부서에서 G90 비용과 유사 수준으로 설계했다"고 말했다.
이어 "호화 외제차 사용을 비난한다면 K-배터리를 팔 수 없게 될 것"이라며 "회원사 배터리를 장착한 우수 국산 전기차인 EV9이 나온 후에는 이 차량을 사용 중"이라고 덧붙였다.
회장사인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회원사인 배터리 기업들은 지난 19일 한국배터리산업협회·연구조합지부의 준법 투쟁 관련 이메일을 받고 나서야 사태를 인지했다는 입장이다. 노사간 임단협이 총 8차례 진행됐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주관한 두 차례 최종 조정회의까지 안건이 올라가 최종 결렬된 것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산하 한국배터리산업협회·연구조합지부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지난달 30일 총 3번의 조정 절차를 거쳤음에도 최종 결렬됐다. 결국 이달 1일 쟁위행위 찬반 투표를 진행한 결과 조합원 91% 찬성으로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했다.
협회는 현재 승진 관련 요구 사항에 의한 노조의 파업은 법규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법무법인의 법률 자문을 의뢰한 상태다. 결과에 따라 노조에 쟁의에 대응할 계획인 만큼 노사 간 갈등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지난 20일 오전 8시 30분 서울 서초구 한국배터리산업협회와 한국배터리연구조합이 위치한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회관 앞에서 한국배터리산업협회·연구조합지부가 27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을 하고 있다. 박한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