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 47일 만의 공개 행보가 '부정선거 영화 관람 일정'이다. 지난 17일 백의종군한다면서 탈당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벌인 일이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당은 연일 그가 벌인 계엄과 탄핵에 대해 대신 사과하고 있는데, 보란 듯 재차 부정선거를 꺼내 드는 행보를 한 것이다.
영화관에 설치된 홍보 포스터에는 영화 제목과 함께 '6월 3일 부정선거 확신한다'라는 문구가 크게 새겨졌다.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면 결과는 정해져 있기에, 이 문구는 선거일에 국민의힘에 투표해야 하는 이유를 없애버리는 말이다. 이것이 그가 '백의종군'하는 방식이라면 그 자체로 아연실색할 일이다.
그는 지난해 12·3 계엄의 밤 때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면서도 군인은 선관위에 보냈다. 하지만 같은 달 12일 법의 심판대 위에 올려질 가능성이 커지자 "과거 계엄과 달리 계엄의 형식을 빌려 작금의 위기 상황을 국민들께 알리고 호소하는 비상조치를 하자고 했다"고 변명했다. 자신의 계엄은 실체가 없는 경고성 계엄이라는 뜻으로 읽혔다. 그런데 영화를 본다는 일정으로 다시 부정선거 이슈를 꺼내들었다.
백번 양보해 '그가 계엄의 주된 이유로 부정선거를 주장해왔으며 그의 행동은 지난 행보의 연장선일 뿐'이라고 가정하고 싶어도, 그 논리는 이미 대통령 탄핵 결정과 파면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에서 완전히 기각당했다. '헌재에서 기각돼도 나는 승복하지 않는다'는 식의 행동이 진영을 위한 백의종군이 될 수는 없다.
정치적인 이유라고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다. 윤 전 대통령의 경우 탄핵 후 국민의힘 내부에서 탈당·출당 등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있었지만, '자신이 있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며 버티다가 최연소 의원인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으로부터 탈당을 권유받은 후에야 물러났다. 국민의힘과 생각이 달라 다른 길을 택했어야 했다면 훨씬 일찍 탈당했어야 하고, 국민의힘에 도움이 되고자 했으면 부정선거를 말하면 안 됐다. 무엇보다 오래전부터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있는 황교안 무소속 후보 또한 이날 영화를 보러 왔다. 그렇다면 윤 전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황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나.
그의 백의종군은 어떤 방식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괴이한 방식이다. '대체 계엄을 왜 했나'만큼이나 괴이하다.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 인사들이 '대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왜 느닷없이, 기습적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전격 압수수색 했는지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다'고 성토한 게 새삼 떠오를 만큼 괴이하다.
물론 백의종군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만의 백의종군 방법이라면 존중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정권이 바뀔지 여부와 별개로 '최소한 보수정당이 탄핵과 계엄의 강을 건너고 새로운 시작의 발판을 마련해 더 건설적인 보수정당이 생겨나길' 바라는 많은 국민들이 있다. 이들에게 '오죽했으면' 이라는 하나 남은 동정심마저 스스로 없앨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 뿐이다.임재섭기자 yjs@dt.co.kr
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서울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관람한 뒤 상영관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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