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일 한미 기술협의서 비관세 장벽 문제 제기
쇠고기·쌀 등 거론 가능성
전문가 "농산물 지렛대 삼아 협상 범위 넓히려는 포석"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워싱턴 DC에서 열린 관세 관련 2차 기술협의에서 비관세 장벽 해소를 요구하며 협상 테이블에 '통상 청구서'를 정면으로 내민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이번 협의에서 제기한 요구 가운데는 소고기·쌀 등 국내에서도 민감한 품목들에 대해서도 규제 완화 요구도 제기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유지를 최우선 과제로 꼽으며, 비관세 장벽은 산업·복지 정책과 연계해 외교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5일 정부 등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20∼22일(현지시간) 열린 한미 협의에서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 (NTE)에 명시된 여러 '비관세 장벽' 문제를 집중 제기하며 한국 측의 적극적인 해결 노력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미국이 사실상 무관세 상태인 한미 FTA 체제 아래에서 한국에 '비관세 장벽' 해소를 집중 요구하며 양보를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기한 요구 가운데는 국내에서도 민감한 소고기와 쌀 수입 규제 완화에 관한 내용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앞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발간한 NTE 보고서에서 △30개월 미만 미국산 소고기 수입 제한 △구글의 정밀 지도 반출 제약 △약값 책정 정책 △무기 수입 시 기술 이전 요구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특히 미국 정부는 2008년 한미 간 소고기 시장 개방 당시 한국이 월령 30개월 미만 소에서 나온 고기만 수입하도록 한 것을 '과도기적 조치'로 규정해놓고 이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쌀' 역시 미국이 불만을 제기한 주요 품목으로 거론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상호관세 발표 행사에서 "한국은 미국 쌀에 50%에서 513%까지 다양한 관세를 매긴다"며 "우리가 쌀을 못 팔기를 바라기 때문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한국은 수입쌀에 513%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다만 저율관세할당(TRQ) 물량 연간 40만8700톤(t)이며, 이 가운데 미국에 배정된 몫은 13만2304톤이다.
한국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함께 농산물에 관세화를 적용했지만, 쌀에 대해서는 두 차례(1995~2004년, 2005~2014년) 예외적으로 관세화를 유예했다. 대신 일정 TRQ 물량에 한해 5% 관세로 수입을 허용해 왔다. 2014년 9월 관세화 유예 종료에 따라 정부는 미국을 비롯한 5개국과 5년간 검증 협의를 거쳐 현재 관세율을 적용했다.
이미 협상이 종료된 쌀 관세 문제를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꺼낸 것은 농산품 등을 지렛대로 삼아 협상 범위를 넓히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이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 제한이나 쌀 수입 규제 등 한국의 비관세 장벽을 거론했다면, 이는 사실상 우리 측 핵심 이익에 대한 양보를 요구한 것"이라며 "쌀 문제 등은 피해 계층과 이해 계층이 나뉘는 만큼, 산업 간 균형과 보완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을 허용하더라도 라벨링을 통해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하고, 피해가 예상되는 고령 농가에는 직접 소득 지원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며 "한미 FTA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일부 비관세 장벽에 대해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도 전략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쌀의 경우 WTO 의무 수입 물량과 연결된 복잡한 사안인 만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북한에 신호를 보내려는 의도를 활용해 미국산 쌀을 인도적 지원 방식으로 연계하는 외교적 접근도 가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세종=강승구기자 kang@dt.co.kr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달 16일 제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면담을 통해 지난 5.1일 개최된 기술협의 경과를 점검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