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시간 15분 내로 줄이고… 검사 비용은 800만원서 10만원 이하로 낮춰
정밀 EIS 측정에 AI 분석 접목해 통합 진단 플랫폼 구축 목표 고도화 집중
정밀 EIS 측정에 AI 분석 접목해 통합 진단 플랫폼 구축 목표 고도화 집중
![[오늘의 DT인]배터리 진단 불모지서 `세계 최초`까지… "EIS 대중화 선도할 것"](http://contents.dt.co.kr/images/202505/2025052602102132049001[1].jpg "[오늘의 DT인]배터리 진단 불모지서 `세계 최초`까지… \"EIS 대중화 선도할 것\"")
홍영진 민테크 대표
불과 10년 전 국내 도로를 달리는 전기차는 단 5712대로, 전체 차량의 0.03%에 불과했다. 전기차 폐배터리가 그저 먼 미래의 일로 여겨진 2015년 당시 민테크 설립자인 홍영진 대표는 이 작은 숫자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당시 국내에는 전기차 배터리를 진단하는 기업이 한 곳도 없었다. 심지어 배터리를 검사하는 비용이 신품 배터리 가격만큼 비쌀 정도로 현실적 기반조차 전무했다. 민테크는 배터리의 재사용을 위해선 검사와 진단이 필수라는 신념 하나로 맨땅에서 시작했다.
홍영진 민테크 대표는 "당시 배터리 가격은 약 2000만원대인데 검사 비용이 최소 800만원에 달했다"며 "누구든 합리적인 가격으로 배터리를 진단해 재사용 여부를 알 수 있도록 검사비를 70~80만원까지 낮추고 양산 체계가 갖춰질 경우 10만원 이하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이어 "마침 환경부가 전기차 배터리를 반납하면 8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었다"며 "소비자가 2만원을 보탠 10만원으로 검사를 시도해 진단 결과 재사용이 가능하면 중고 배터리로 700~800만원의 가치를 회수할 수 있어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용을 감수하고 시도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홍 대표는 검사 시간이 15분 이내, 비용은 10만원 이하라는 현실적인 조건을 충족할 방안을 찾기 위해 기존의 모든 진단 방식을 전수 조사했다. 국제표준의 'C-rate(시레이트)' 기준은 충전 3시간, 안정화(휴식) 2시간, 방전 3시간 등 총 8시간에 걸친 충·방전 테스트를 진행해야 한다.
배터리 진단의 정확도를 위해 이 과정을 3회 반복하는 것이 표준 권고다. 충반전 고전압 배터리 검사 장비 한 대당 수억원이 드는데 진단 시간도 배터리 1개당 최대 24시간 이상 소요되는 만큼 중고 배터리 진단에 적용하기엔 비효율적인 것이다.
홍 대표는 "전기화학 임피던스 분광법(EIS)만이 목표를 충족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며 "처음부터 직접 장비를 만들 생각은 없었던 것이 '어딘가엔 장비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해 독일, 일본 등 여러 나라를 뒤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기존 EIS 장비는 5~20V 이내만 측정 가능해 400~500V급의 전압을 측정할 수 있는 EIS 장비 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웃어 보였다.
배터리 장비 개발은 전기·전자, 제어, 펌웨어 알고리즘, 회로 설계 등 다양한 전문 영역이 필요한 고난도 작업이다. 당시 직원이 5명에 불과한 민테크로서는 벤처의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지만 부족한 기술력은 외부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결국 3년 만인 2018년 세계 최초로 전기차 배터리용 1000V까지 측정할 수 있는 EIS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홍 대표는 "EIS는 배터리의 저항값(임피던스)을 측정해 성능을 추정하는 기술로 미리 임피던스와 용량 간의 상관관계를 확보해 두면 EIS 측정값만 보고도 '이 배터리의 용량은 이 정도겠구나'하고 예측할 수 있다"며 "표준 방식 대비 95~97%의 일치율을 보여 완전 충방전 같은 복잡한 과정과 긴 시간을 거치지 않아도 진단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 대표는 "여기까지 오기도 하나도 쉬운 게 없었다"며 "아무도 하지 않았던 고전압 배터리 진단 분야라서 샘플도, 예시도, 비교할 대상도 없었던 게 가장 힘들었다. 잘하고 있는지조차 확신이 안 서는 데 그 불안이 팀 전체에 퍼지면 모두가 포기 직전까지 가게 된다"고 털어놨다.
홍 대표가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오히려 단순했다. 그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할 게 없어서 계속한 것"이라며 그렇게 버텨낸 시간들이 결국 민테크를 고전압 배터리 진단 분야의 선두 주자로 이끈 원동력이 됐다.
기술보다 더 어려웠던 건 기회였다. 홍 대표는 누군가에게 '그래 한번 해보자'는 말을 듣기까지가 가장 지난한 과정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렇게 얻어낸 첫 수주가 2018년 현대자동차와 제주테크노파크와의 계약이었다.
홍 대표는 "그때 제 소원이 3개월 치 급여를 통장에 쌓는 것이었을 만큼 절박했는데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며 "제주도에 장비를 구축하면서 아이오닉 초기 모델 60대분의 중고 배터리를 진단했고 이를 에너지저장장치로 만들어 현대제철 당진공장에 설치하면서 업계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첫 납품도 직접 나섰다. 대전 중고차 시장에서 550만원에 구입한 1톤트럭에 장비를 싣고 직원 두 명과 함께 모두가 잠든 자정 무렵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했다. 당시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하면서 탄 3등칸은 한쪽 구석에서 담요를 덮고 자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홍 대표는 "직원들이 '노예선'이라고 부를 정도였다"며 "두 번째 납품 때는 30억원 규모의 큰 계약이었고 제가 4인실 2층 침대 방을 예약하자 직원 모두가 감탄했다. 정말 힘들었지만 그 모든 순간이 낭만으로 남아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민테크는 EIS 기반의 배터리 전용 검사 진단 시스템을 상용화하는데 멈추지 않았다. 비전문가도 활용할 수 있도록 분석 과정을 자동화하는 시스템까지 구축하는 데 또 1년여간의 노력이 필요했다. 현재까지 현장에서 데이터를 분석해 솔루션까지 일괄 도출하는 기술은 민테크가 유일하다.
특히 민테크는 기존 진단 비용을 기존 가격 대비 최소 10배 이상 낮춘 기술이란 타이틀까지 달았다. 여전히 국가공인시험기관 등에서 고전압 배터리 진단 시 건당 500~1000만원의 비용이 발생하지만 민테크는 자체 장비의 원가를 수억원에서 지속적으로 절감해 획기적인 비용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민테크는 현재 전 주파수를 스캔하는 정밀 EIS 측정에 인공지능(AI) 분석을 접목해 배터리의 미래 성능과 위험성까지 예측하는 통합 진단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고도화를 진행 중이다. 여러 주파수를 한꺼번에 동시에 쏴서 3~5초 만에 분석 가능한 '패스트(Fast) EIS'와 주행 중인 전기차 상태에서도 정확한 데이터 추출을 목표로 '다이나믹 EIS'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홍 대표는 "EIS 기술을 더 싸고 쉽게 만들려면 집적화와 양산규모가 중요해 여러 반도체 회사들과 칩 개발 중"이라며 "EIS 칩을 차량 내 BMS에 직접 내장해 실시간 EIS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도록 국내외 다수 기업과 협업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현장에선 화재 테스트를 반복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보다 안전하고 오래 쓸 수 있는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많은 엔지니어가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며 "전기차 화재가 한 번 발생하면 일반 대중은 공포심을 가지지만 배터리 산업을 바라보는 시장과 소비자들이 이런 노력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 이 분야에서 이뤄낸 기술적 축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두가 알게 될 것"이라며 "민테크 역시 배터리 상태를 언제 어디서든, 빠르고 저렴하게, 실시간으로 위험 예측까지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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