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으로 인한 국내 자동차 업계의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자동차 수출액과 더불어 자동차 부품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에 자동차 업계에선 미국에 선제적으로 쌓아둔 재고가 소진되고 있는 만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한 관세 돌파구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대(對)미 자동차·자동차 부품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2%, 8.3% 급감했다. 이에 따라 대미 수출액은 전년 대비 8.1%, 전체 수출액은 1.3% 감소하며 4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업계에선 완성차 및 부품사가 3~4개월치 재고를 선제적으로 쌓아놔 아직까진 충격을 흡수할 수 있었으나, 그 효과도 곧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고가 바닥을 보이면서 현대자동차·기아는 이달 중 미국 시장에서 차량 가격을 일괄 인상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현대차·기아는 지난 2일까지는 가격을 동결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이미 포드는 지난달 일부 차종의 가격을 최고 2000달러 올렸으며, 일본 스바루도 일부 신차 모델의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 볼보자동차의 하칸 사무엘손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인터뷰에서 관세 인상의 상당 부분을 소비자가 부담하게 될 것이라 시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기아도 시장의 반응을 지켜보며 점진적으로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엔트리 모델의 가격을 올리긴 어려울 것"이라면서 "미국 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정부 간 발 빠른 협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현지화로 대응할 여력이 없는 중소 부품사들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관세 조치가 장기화될 경우 수익성 악화는 물론 연구개발(R&D) 투자도 위축돼 중장기적인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오린태 부산자동차부품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지난달 29일 한국무역협회가 주재한 '부산 자동차부품업계 간담회'에서 "자동차 부품에 25% 관세가 부과되면서 대미 수출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급감하고 있다. 관세 조치가 장기화될 경우 기업 존립을 위협받을 수 있다"며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대외 통상 리스크인 만큼 정부와 협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업계에선 차기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최우선으로 단행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영국은 미국과 연간 10만대에 한해 자동차 관세를 10%로 낮추는 것에 합의했으며, 유럽연합(EU), 일본, 베트남, 인도 등도 활발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의 정부 공백 상황인 만큼 한국과의 협상에서는 별 다른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취임 11일 만에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에 나선 바 있기에 차기 정부도 관세 문제를 시급 해결 과제로 올려놓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도 예상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한미 정상회담이 최소 1~2개월은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동안의 손실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