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의 보급형 전기차 바람을 선도하고 있는 기아가 글로벌 가격 경쟁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전기차 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에 중국산을 택하며 중국 전기차 업체에 버금가는 가격에 성능까지 겸비한 전기차 보급에 서두르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전기차 현지 생산 체제도 갖춰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도 넘을 전망이다.
기아의 이러한 전략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모델은 PV5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의 첫 목적기반차량(PBV)인 PV5는 올 3분기 국내를 시작으로 유럽 등 지역에 순차 출시될 예정이다.
기아는 PV5에 탑재될 배터리로 중국 CATL의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를 택했다. 기아는 앞서 니로 EV에 CATL의 NCM 배터리를, 레이 EV에 CATL의 LFP 배터리를 탑재한 이후 처음이다.
업계에선 기아가 차기 먹거리로 내놓은 PBV 첫 모델에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것이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은 성능이 가장 중요하다는 기조 하에 중국산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보다 국내 NCM 배터리를 선호해왔다.
중국산 전기차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주행가능거리 등 성능은 앞서있다는 이미지를 심기 위해서다. 하지만 중국 배터리 업체의 기술력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는 현 시점에서 더 이상 국산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졌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중국산 전기차와 성능 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기아 역시 중국산 배터리의 채용을 늘리는 분위기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니로 EV에 들어간 NCM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떨어진 저가 제품이었지만 PV5에 들어가는 것은 다르다"며 "중국산 배터리도 성능은 국산보다 같거나 더 나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가격까지 더 저렴하기에 완성차 입장에서는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이 같은 경우가 차츰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인 BYD가 유럽 시장을 겨냥해 2만유로(약 3100만원) 안팎의 전기차를 출시하는 등 중국의 저가 공세가 거세지고 있기에 보급형 전기차의 가격을 더욱 낮추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다.
기아는 작년부터 호주와 뉴질랜드 등 글로벌 시장에 중국에서 제조된 EV5를 판매해왔다. 중국에서 생산된 EV5에는 BYD의 LFP 블레이드 배터리가 들어가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이어 국내와 유럽, 캐나다 등에도 EV5를 출시할 예정이다. 국내 모델엔 NCM 배터리 탑재가 확정됐으나 유럽 등 다른 국가의 경우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유럽에 출시될 EV2의 배터리도 중국산을 탑재할 가능성이 있다. EV2는 유럽 사람들이 선호하는 차 크기인 B세그먼트인데 작은 만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원가 절감을 위해 중국산 배터리도 고려 대상이다.
기아와 거래를 늘리고 있는 CATL이 유럽에 투자를 늘리는 것도 관세 회피와 공급망 안정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여기에 기아는 전기차 글로벌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추며 차 값 낮추기에 더 속도를 낼 전망이다. 기아는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생산되는 차의 40%를 기아 차량으로 채울 계획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자동차 관세 정책으로 차 값 인상의 우려가 있는 가운데, 전기차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추게 되면 이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EV9은 이미 미국 현지에서 생산되고 있다.
유럽 생산기지인 슬로바키아 공장도 전기차 생산체제를 구축 중이다. 올 하반기부터 가동될 이 공장에서는 유럽향 EV4 해치백과 EV2 등이 생산될 예정이다.
